한국영화 75년사에서 1919∼34년은 무성영화시대로 기록된다. 영화평론가들에게 이 시기에 나온 영화 1백3편 가운데 대표작 몇 편을 뽑으라면 춘사 나운규(1902∼37)의 「아리랑」(1926년)을 1위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평론가들은 춘사의 「아리랑」을 에이젠슈타인감독이 만든 러시아 영화 「전함 포템킨」(1925년)에 곧잘 비유한다. 몽타주기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제정러시아시대 포템킨호의 봉기를 그린 「전함 포템킨」은 몽타주기법이 뛰어나 영화의 바이블로 불리고, 영화학도들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춘사의 「아리랑」 역시 몽타주기법을 도입하는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상문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본 평론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영상문화재라 할 만한 「아리랑」을 비롯해 광복전의 영화필름이 국내에는 1편도 남아 있지 않다.
한국영화의 뿌리를 캐는데 중요한 자료이자 민족영화인 「아리랑」의 원본필름을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필름찾기운동이 각계에서 전개되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아베 요시시게(안부선중)씨가 소장하고 있는 5만여편의 필름목록에 「아리랑」이 들어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한 재일교포는 유학생, 일본 언론인 및 문화인 1백여명이 참여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빼앗기회」를 만들어 우리 영화 찾기에 나섰다. 최근엔 국내의 다큐멘터리제작자 정수웅씨와 재일 조총련영화제작소가 공동으로 「우리 민족영화를 발굴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 「아리랑」 필름이 있는지 확인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아베씨와 접촉, 필름찾기에 힘쓰고 있다. 다각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창구가 일원화되지 못하고 제각각이 돼버렸다.
정부는 지금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학교수팀에 의뢰한 연구보고서가 이미 나왔고 장르별로 평론가들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계적 개방범위와 개방시기의 결정만 남아있는 상태다.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은 국제화시대에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젠 당당히 맞설 때가 됐다. 다만 개방에 앞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귀중한 영상문화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미온적인 자세가 못마땅하다. 정부는 민간인들이 영화필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된다. 일본에 흩어져 있는 우리 영상문화재의 환수를 일본 대중문화개방의 옵션으로 내세우는 고자세적인 개방정책을 시도해봄직 하다.광복 50주년을 맞는 내년 춘사의 「아리랑」이 돌아온다면 영화계로서는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문화2부장>문화2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