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재야간 조화점 찾기에 노력/굳이 「인권 변호사」 주목않았으면…” 5일 임명제청된 새 대법관 인선에서 가장 괄목한 인물은 인권변호사 출신의 이돈희변호사(56)다. 이변호사는 74년 「명동성당 사건」등 유신이후 많은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아 고 황인철변호사와 홍성우 조준희변호사등과 함께 20여년간 「인권변호사 1세대」로 활동해 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창립멤버로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변호사는 이날 저녁 대법관 임명제청사실이 발표된 뒤 『재야에서의 경험과 소신을 바탕으로 법조계 안팎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부족한 사람에게 중직을 맡겨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굳이 「인권변호사」란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제 대법관에 내정된 사실을 알았나.
『어제 하오 대법원에서 이력서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전에 대법원과 개별적인 접촉은 없어 예상하지 못했다. 부족한 사람을 추천해 준 분들과 중직을 맡겨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처음 대법관에 발탁된데 놀라는 시각도 많은데.
『굳이 「인권변호사」란 딱지에 주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인권옹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법관으로서의 포부는.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판결, 국민에게 진정 호소할 수 있는 판결을 한다는 소신을 갖고 일하겠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현재 사법부의 위상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가.
『과거 사법부의 위신이 추락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는 노력을 사법부 안팎에서 계속해 왔고,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시국사건 변론을 많이 맡으면서 권력의 핍박도 있었을 텐데.
『74년의 「명동사건」을 비롯한 시국사건을 맡아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다. 군사정권 시절 별것 아닌 사건에 연루돼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변호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재산은 어느 정도 되는가.
『89년 구입한 서초동 법원청사 앞의 연건평 1백40평짜리 4층 빌딩(12억원 상당)과 강남구 대치동의 45평짜리 아파트(3억원정도), 큰 아들 집등 모두 합해 20억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경북 선산의 빈농출신으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이변호사는 65년 전주지법 형사합의부 배석판사시절인 73년 계엄하에서 시국사건의 피고인을 보석으로 석방, 법관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현상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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