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구책 「가격 낮추기」경쟁/판매·세일즈전략 대폭수정 “박리다매”/경쟁력저하 자동차·전자제품 더 극성 일본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제대국 일본의 모습은 다양하게 비춰진다. 비즈니스맨에게는 엔고의 높은 벽으로, 여행객에게는 문화를 세일하는 관광의 나라로 탈바꿈해 나타난다. 싫건 좋건간에 일본은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일간의 관광교류가 괄목할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두나라의 지리적 근접성에도 기인하고 있지만 문화적인 유사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일본의 기업은 장기불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어떤 요령으로 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구입하고 있는가. 일본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무엇을 보고 즐겨야 하는가. 여행의 출발지인 공항과 운송수단인 철도는 어떻게 건설되고 움직이고 있는가. 오늘의 일본경제와 교통, 그리고 관광정보를 모아 특집으로 꾸몄다.【편집자 주】
불황을 타개하라!
거품경기가 사라지면서 5년째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기업들이 살아 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끝없이 계속되는 불경기와 엔고에 따른 수입상품과의 경쟁격화 등으로 도산을 모르는 일본기업이라는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공장규모를 줄이거나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기업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안간힘을 계속하고 있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몇년째 격심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요즘 일본산업계의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일본기업은 불황에 견딜 수 있도록 기업의 체질을 과감히 바꾸는가 하면 지금까지의 판매 및 세일즈전략을 대폭 수정, 혁신적인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중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일본산업계의 가격파괴경쟁, 다시 말해 무한정의 저가전쟁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자동차·전자제품등 세계시장에서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주요품목은 물론 골프채등 스포츠용품, 양복등 의류제품, 심지어는 유아용기저귀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품목에 걸쳐 놀랄만한 저가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품질 고부가가치제품을 고집해 온 일본의 대기업들이 이미지손상을 각오해가면서까지 「박리다매에 의한 이윤확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지난 5월은 일본자동차업계로서는 가히 「혁명의 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초저가자동차들이 쏟아져나왔다. 판매가 끌어 내리기에 혈안이 된 자동차메이커들이 앞을 다투어 값을 낮추어 오히려 소비자들이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닛산(일산)자동차가 내놓은 1천5백㏄급 승용차 「루키노」는 88만7천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설정했다. 동급승용차에 비해 30만엔가량이나 싸고 기존의 최저가격인 도요타(풍전)의 「카로라」보다도 13만엔정도나 저렴한 가격이다.
1천5백㏄급의 자동차를 1백만엔 이하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리면서 두자리수의 자동차시대를 연 것이다. 같은날 다이하쓰공업이 공개한 1천5백㏄급 「샤레이드 소셜」역시 95만엔의 판매가를 달고 있어 1백만엔선 붕괴의 첨병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본자동차업계의 저가경쟁은 엔고를 틈타 비집고 들어온 미국산 수입자동차때문에 시작됐다. 5월 중순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미포드사의 스포츠카 「무스탕」이 수입차가 갖는 운송비 유통비등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일본차보다 최고 1백만엔이나 싼 가격으로 판매에 나섰던 것. 3백만엔이상은 지불해야 살 수 있었던 꿈의 스포츠카를 2백만엔을 조금 웃도는 가격에도 매입할 수 있게 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매 첫날부터 관람객 수만명이 몰려들었고 5월 한달에만 8백65명이 계약을 맺어 판매목표인 4백대를 배 이상 넘어서는 호조를 보였다. 일본자동차업계가 긴장, 가격인하로 맞서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내년부터 저가상품용 제2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가전메이커 히타치(일립)의 결정도 적자탈출을 위한 고육책의 일환이다. 제 2브랜드의 상품은 히타치브랜드보다 30∼50%가량 싸게 가격을 설정, 소비자들의 소비충동을 자극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브랜드이미지손상을 각오하면서까지 히타치가 이처럼 박리다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지난해 4백55억엔의 적자를 기록한 영업실적 때문이다.
가전업체중 영업실적이 가장 나빴던 아이와사는 일찌감치 저가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매출액이나 이익규모에서 만년꼴찌의 수모를 당하던 아이와의 성공비결은 기능단순화에 따른 초저가공세였다. 다른 가전업체가 대당 10만엔에 파는 미니컴포넌트를 절반수준인 5만엔대로 내려 팔았던 것. 물론 해외공장에서의 생산이라는 코스트다운효과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었다. 지난해 경상이익이 전년보다 2·2배 성장했다는 수치가 저가전략의 위력을 실감시키고 있다.
일본에 불기 시작한 저가판매바람은 제조업체나 유통업체 서비스업종에 이르기까지 산업계전반을 거세게 흔들어대고 있다. 장기불황과 엔고로 인한 판매격감, 수출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등장한 저가경쟁은 바야흐로 일본의 산업구조를 바꿔놓을 만큼 거대한 흐름으로 등장한 것이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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