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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경영철학 제시 고려대 홍일식총장(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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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경영철학 제시 고려대 홍일식총장(한국인터뷰)

입력
199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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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서비스 경재시대”/창의적 연구·강의로 「고객」만족 온힘/입시제 자율권늘리는 일관정책 중요/재정문제 정부의존 앞서 자기혁신하면 저절로 해결□대담=문창재사회부장

 홍일식 고려대 새 총장(58)은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 지난달 16일 취임 이후 업무파악과 직무구상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연일 이런저런 회의와 축하모임이 겹친다. 고대 국문학과 재학시절 「륙당 최남선연구」 출간 이후 일생을 국학에 몰두하던 완숙한 국문학자인 그의 취임 제1성은 『전통만으로는 명문대학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한 우위변수의 창출만이 성장의 요건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도전과 쇄신이 없는 대학은 죽은 대학』이라고 단언한다. 서울시 지방문화재인 고색창연한 본관 석조건물 1층에 자리잡은 총장실을 찾아 독특한 경영철학과 장기발전계획등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주】

 ―축하합니다. 먼저 제13대 총장 취임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21세기의 개막을 앞두고 우리 대학과 사회 모두에 중대한 전환기적 과제가 주어진 때에 대학경영책임을 맡게돼 벅찬 부담감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교육구국」으로 시작해 「교육입국」이라는 명제로 발전해온 고대의 건학이념을 「교육흥국」으로 확대 계승하고, 역대 경영진의 선공후사정신에 누가되지 않도록 지성껏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갈수록 대학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고대를 최고 명문사학으로 이끌어 갈 경영철학은 어떤 것입니까.   

 『대학도 이제는 안일한 자세를 박차고 일어나 경쟁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마다 「경쟁우위의 변수」 창출과 육성에 힘써 경쟁에서 이겨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학문체제와 경영방식, 연구·교육시스템의 창의적 노력없이는 대학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학도 서비스정신을 도입해 학생 학부모 일반사회라는 「고객」들에게 만족을 넘어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고객감동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교수들은 열심히 강의해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교직원들도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대학병원도 돈벌이가 아닌 인술의 본령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조용하던 학생운동이 최근 우루과이라운드, 철도·지하철파업등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낡은 사고의 틀에 얽매인 운동논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이 「진보」를 자임하려면 변화를 직시하고 자기논리의 근거와 체계를 냉철하게 재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진보라는 구호 속에 안주해 자기혁신을 회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수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교육개혁위에서 당장 대학입시 본고사를 폐지하자고 해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교육일선의 당사자로서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교육정책 입안자들도 고충이 있겠지만 입시제도를 둘러싼 정책의 혼선과 잦은 변경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본고사 실시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이 자율적인 학생선발 역량을 갖추게 하는 정책의 일관성이라 생각합니다. 단기적 처방으로만 문제에 접근하는 정책구도에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없어요』

 ―전국 초중고교 교장들이 본고사는 고액과외를 불러 일으키고 학교교육을 파행화시킨다고 폐지건의를 했는데요.

 『대학입시정책의 정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람직한 방안은 학생선발기준을 다양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은 현행 본고사제도를 중심으로 보완해나가고 장기적으로는 전공분야별 특성을 고려해 입시제도를 개선할 계획입니다』

 ―96년부터 교육시장이 개방돼 국내대학들은 당장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교육시장 개방이 임박해서야 경쟁력을 심각하게 논의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예요. 지식·기술의 개방과 경쟁은 역사적 필연입니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먼저 대학체제의 변혁이 절대 필요합니다. 종래의 분과주의에 안주하는 연구와 교육으로는 경쟁력이 신장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국내대학들은 우수학생 유치에만 열중했지 특색있고 내실있는 교육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현재의 대학입시는 입학시험인 동시에 졸업시험이나 다름없어요. 입학만 하면 그럭저럭 졸업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교육은 사람을 일정한 가치목표에 도달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의 질은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의해 평가돼야 합니다. 입학은 쉽게, 진급과 졸업은 어렵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봅니다. 행정의 효율성과 연구의 생산성 면에서도 아직 미흡한 편입니다. 대학과 대학 사이는 물론, 한 대학 안에서도 선의의 경쟁체제가 필요합니다. 도전과 쇄신이 없는 대학은 곧 죽은 대학이라는 자각이 확립돼야 합니다』

 ―각 대학들이 앞다투어 장기발전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고대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장기발전계획은 대학규모와 시설등 물량적 기준보다 학문적 생산력과 교육의 탁월성이라는 질적 기준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개교 1백주년을 맞는 2005년까지 연구·교육에 있어 전 학과의 30% 이상을 외국 명문대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대학원생의 비중을 현재의 3배 정도로 늘려 대학원 중심의 대학체제를 갖출 계획입니다. 물론 교수당 학생비율, 책임강의시간, 도서관의 정보기능, 교육연구시설등도 국내최고수준이 될 것입니다. 또 현재 학교재정의 약 70%에 달하는 등록금 의존비율을 55% 이하로 낮추고 대학 자체의 수익과 사회적 지원 및 기부금으로 나머지를 채우도록 할 것입니다』

 ―국내사학들이 재정확충을 위해 기부금입학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기발전계획을 뒷받침할 재정확충계획은 어떤지요.

 『대학입학자격을 돈으로 사는 식의 기부금입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을 갖춘 학생이나 대학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자녀등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육기회를 받는 것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의 재정문제도 무턱대고 국가에 돈을 달라고 하는 것보다, 국가나 기업이 대학에 돈을 줄 수밖에 없는 경쟁우위의 프로그램을 창출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봅니다』

 ―취임사 중에 「 민족통일을 위한 진원지로서의 고대」를 강조하셨는데 우리 민족의 통일방안과 고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정의하십니까.

 『분단극복이라 하면 영토와 인구의 정치적 통합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의 과제는 그보다 더 크고 넓은 것입니다. 분열된 의식과 문화의 통합없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한의 통합은 어느 하나의 기존문화에 의한 일방적 흡수가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총체적 조정에 의한 일대 융합이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고대는 가장 믿음직한 전통과 특성을 갖춘 대학입니다. 개교이래 오늘날까지 지역·종교의 차이를 두지 않고 다양한 인재를 포용해 민족체질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을 지닌 대학으로 자임해 왔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보편성의 전통은 통일시대의 비전과 지도자를 기르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고대는 사제지간·선후배 사이가 돈독한 학풍으로 이름 높습니다. 그런 전통이 경쟁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만.

 『올해로 개교 89주년을 맞은 우리 대학은 무엇보다 순수 민족자본과 민간에 의해 키워진 민족사학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거기에 15만 교우의 남다른 애교심, 우수한 학생, 국내 최고수준의 교수진등을 고루 갖추어 발전의 밑거름은 충분한 셈이지요. 특히 타대학과 달리 현재 교수중 55%만이 본교출신일 만큼 개방적인 성격도 또다른 강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총장상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총장은 일반적으로 기풍과 인격을 겸비한 고전주의 총장과, 학교경영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총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임기중 저는 양자를 겸비한 「슈퍼맨」적 총장의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정리=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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