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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숙한 국민 되어야/이세중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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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숙한 국민 되어야/이세중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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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전 어느 외국인과 만나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는 북한의 핵사찰 거부와 이에 따른 제재를 둘러싸고 외국의 언론매체들이 한반도에서 전쟁발발의 위험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고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을 때 불안한 심정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입국하여 여기에 체류하는 동안 두번 크게 놀랐다고 한다. 외국의 언론들이 금방 전쟁이 터질것처럼 법석을 떨어 사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으나 막상 이곳에 와보니 너무나 평온한 가운데 한국민들이 일상생활에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처음 놀랐다는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고 그는 6·25당시 북한의 도발로 처절한 동족간의 전쟁을 경험한 한국이 이토록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지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궁금증이 채 풀리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또 한번 크게 놀랐다는것이다. 입국할 때 잔뜩 곤두세웠던 긴장이 풀리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낯선 나라의 풍물을 구경하는 수일동안 TV화면에 나타난 과격한 폭력데모와 철도 및 지하철 파업보도를 보고 두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것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의 실현은 공공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달리는 열차를 강제로 세워 이를 타고 상경하는 행위나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폭력데모를 하는 행위등 요즘 선진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이어 북한이 국제조약을 위반하면서 핵개발에 열을 올리고 남한 불바다등 전쟁위협발언을 계속하는 긴장된 상황에서 왜 하필 이런 때에 기간산업의 하나인 철도파업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나름의 사회운동 단계론을 내세우면서 한국이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또 문민정부 출범후 정치적 자유가 크게 신장되었는데도 구시대적 폭력시위가 재연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캐물었다.

 나는 그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관하여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가진것에 우선 고마워하면서 그의 물음에 나의 견해를 밝혔다. 그가 던진 첫번째 질문에는 평소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것을 간추려 별 어려움없이 설명을 하였고 그도 쉽게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두번째 질문에는 나 자신도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우 곤혹스러웠다. 다만 학생들의 데모이슈는 UR협상 비준반대라는 사실과 철도 및 지하철노조의 파업은 노사간의 임금협상결렬에 따른 단체행동이라는 사실만 말했을 따름이다.

 그는 자기가 제기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데 다소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한때 폭력과 테러를 통하여 어떤 요구를 관철하거나 국내외의 관심을 끌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것은 구시대적인 낡은 발상으로서 이제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라고 톤을 높였다.

 이와 같은 폭력수법으로는 아무리 합리성이 있고 정당성이 부여된 내용의 주장일지라도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라는 논거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60∼70년대 좌파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는 한때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여 큰 진통을 겪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폭력을 수반한 학생데모에 대하여 사회전반으로부터 강력한 비난이 제기되고 일반인이 모두 외면해 버리자 폭력시위는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평화적 시위로 양상이 바뀌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후 학생들의 시위 자체가 아예 사라지거나 또는 현저히 감소하고 대학은 어느새 학술연구와 면학분위기로 충만한 모습으로 변한지 오래다.

 정치, 경제, 문화가 향상되어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행동이 성숙되어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숙한 사회에서는 폭력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양식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항상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춘 요구만이 수용되고, 그렇지 않은 요구와 주장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눈부신 경제발전의 터전 위에서 문민정부 출범이후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정치도 모양새를 갖추어 이제는 우리 사회도 제법 성숙되었다고 믿고 있던 많은 국민들은 남총련산하 학생들의 폭력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것으로 본다.

 앞서의 폭력시위로 많은 학생과 경찰이 다치고 급기야 1백여명의 학생들이 무더기로 구속된 사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과거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국민의 인권을 마구 침해하면서 강압통치를 펼쳤던 권위주의 정권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태가 문민정부에 와서 또 다시 재연된것은 결코 외국인의 눈에만 이상하게 비쳐질 일이 아니다. 이제는 쇠파이프를 들고 치고 받는 모습이나 돌멩이와 화염병이 날아드는 험한 상황은 제발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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