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순 장기려박사 「망향44년」/남북정상회담 소식에 “설렘”/“사랑으로 통일길 닦아주길”/“한국의 슈바이처” 평생 인술봉사 『44년동안 간절히 바라던 남과 북의 진정한 만남이 이제 이뤄지는 듯해 가슴이 벅찹니다. 북녘에 두고 온 처자의 모습이 손에 잡히는 것 같습니다』
장기려박사(83·부산 청십자병원 명예원장)는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소식을 반평생을 그리며 산 처자와의 재회를 예고하는 낭보로 느끼는 듯 했다.
혈육을 북에 둔 실향민들의 애틋한 심정은 비슷하겠지만, 기나긴 단절의 세월을 「수절」해 온 그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평북 용천태생으로 경성의전을 나온 장박사는 평양의학대학 외과교수로 있던 50년 12월 평양 대폭격의 와중에 2남 가용씨(59·서울대의대교수)만 데리고 월남했다. 부인 김봉숙씨(83)와 나머지 5남매는 평양에 남겨둔 채였다. 많은 실향민들이 그랬듯이 『곧 다시 돌아 오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피란수도 부산에 정착한 장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 전화속에 버려진 영세민들을 위한 의료구호사업에 헌신해 왔다.
40여년간 그가 인술로 베푼 사랑의 공적은 넓고 깊다. 79년 막사이사이상을 받고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박애의 삶을 떠받친 지주는 북에 있는 처자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마음이란 것을 세상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그 긴 세월을 홀로 지내며 오직 병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만 전념했다. 집 한채 지니지 않은채 고신의료원측이 마련해 준 20평짜리 관사에서 노년을 살고 있는 것도 북녘의 처자가 가슴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사랑과 뜻 안에서 이뤄지는 거지요. 북한 김주석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해 왔고, 이제야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 사찰거부로 전쟁위기가 고조될 때도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이 성취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며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장박사는 최근 당뇨병에 중풍이 겹쳐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여전히 매일같이 부산 동구 수정동 청십자병원에 나가 하루 10여명의 환자를 돌본다.
그는 『사랑 앞에는 어떤 이념도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남북의 위정자들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번 만남을 통일로 이끌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2차세계대전후 분단됐던 베트남과 독일은 모두 통일을 성취했으나 무력으로 통일한 베트남은 가난에 시달리고 경제력으로 통일한 독일은 국민간의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우리는 무력도 경제력도 아닌 오직 사랑으로 통일을 성취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은 『요즘에는 북에 있는 다섯 남매 생각이 한층 간절하다』며 『아내가 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부산=김종흥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