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등과 외교마찰 우려커져/연내 국회해산·총선실시 유력 무라야마(촌산부시)사회당위원장이 29일밤 일본의 새총리에 선출됨으로써 일본정계가 또다시 대대적으로 재편됐다. 지난해 7월 자민당의 38년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진 이후 일본정계는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등 줄곧 파행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정계이변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회당과 연립여당측의 감정대립. 사회당은 연립여당으로의 복귀를 위해 이날 연립여당측과 정책협의를 벌였으나 소비세인상을 포함한 세제개혁문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연립여당을 물러나게 하기위해 자민·사회·사키가케 3당 연합을 제의한바 있는 자민당은 이같은 상황을 통보 받자 즉각 총무회의를 소집, 무라야마위원장을 총리로 지지키로 결정했으며 사키가케의 다케무라(무촌정의)대표도 무라야마지지를 발표했다.
한편 사회당이 연립복귀를 거부하고 자민·사키가케가 중의원 본회의에서 무라야마위원장을 총리로 옹립할 움직임을 보이자 연립여당의 작전본부장인 오자와(소택일랑)신생당대표간사는 자민당과 사회당에 잠복해 있는 자신의 비밀조직에 긴급지시,반격작전을 전개했다.
하타(우전자)내각의 사퇴이후 연립여당내에서 『하타총리외에는 인물이 없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물러난 총리가 재임되는 것은 헌정의 상도에 벗어난다』며 하타재임을 부인해 왔던 오자와씨가 의중에 둔 인물이 가이후전총리였음이 이때 드러났다.
자민당 총무회의에서 고노(하야양평)총재가 사회당의 무라야마위원장을 총리로 추대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직후 가이후전총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책이 상이한 자민당과 사회당이 손잡는데는 반대하며 무라야마위원장을 총리로 추대할 수 없다』며 탈당을 선언했고 뒤이어 나카소네(중증근강홍)전총리와 와타나베(도변미지웅)전부총리등도 가이후씨의 지지를 표명하는등 집행부에 반기를 들었다.
한편 사회당의 중간·우파그룹인 「데모크라츠」 소속의원들은 당의 중집위가 자민당과 손을 잡는데 불만을 품고 일부가 이탈표를 던졌다.
무라야마총리 탄생은 오자와씨의 무리한 수법에 대한 자민당과 사회당의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 일본신당과 민사당등 연립내부에서도 『연립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회당의 주장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오자와씨는 끝까지 주전론을 굽히지 않았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사회당에서 총리가 된것은 지난 47년에 발족했다가 단명정권으로 끝난 가타야마(편산)내각이후 47년만의 일. 전후 보수세력을 축으로 정권을 이어온 일본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향후 일본 국내외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시 된다. 우선 미국과 한국에 어떤 형태로든 당혹감을 줄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들은 무라야마총리의 출현으로 앞으로 북한핵문제는 물론 일본의 안보·외교정책에서 미국 한국등 우방과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무라야마 신임총리는 지금까지 『하타내각의 후임내각은 선거관리내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점으로 미루어 무라야마내각도 금년내에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이재무특파원】
◎무라야마는 누구인가/타협·조정의 명수… 호헌지지
29일밤 신임 일본총리로 선출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사회당 위원장은 일본정계에서 「타협과 조정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해 9월 정치개혁법안의 채택을 둘러싸고 사회당 강·온파간에 첨예한 대립 양상을 빚자 위원장을 맡아 당의 내분을 수습했으며 이번 정권협의에서도 특유의 협상술로 자민당을 끌어들여 대권을 안았다.
그는 당내 좌파출신이면서도 국회대책위원장과 사회당위원장으로 옹립될때에는 중도우파의 지지를 얻는등 사회당내에서는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의 개정을 적극 반대해온 무라야마신임총리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함으로써 한반도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자이다.
고향인 규슈(구주)오이타(대분)시에서 시의원과 현의원을 거쳐 72년 중의원의원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한 무라야마는 현재 7선의원. 국회내에서는 예산위간사, 물가문제 특별위원장등을 역임한 경제통이며 위원장당선전에는 국회대책위원장을 맡았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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