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긴장… “정상회담 자체가 큰 의미”/청와대/매시간 상황점검… “문민정부의 승리”/총리실/성사여부 묻는 증권투자자 전화 폭주/통일원○대국민 홍보에 신경
○…청와대는 28일 하오 판문점 예비접촉에서 양측 수석대표들이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서에 서명하는 순간 하루종일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며 『남북 정상이 만난다는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그 의의를 강조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2차회담 서울개최여부에 대해 『북측의 성실한 태도여하에 달린게 사실』이라고 다소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남북관계개선의 계기가 된다면 김영삼대통령이 어딘들 못가겠느냐』고 말해 우선은 장소가 평양이라해도 정상회담이 열린다는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는 『의제없이 만나는 정상회담에서 얼마나 성과가 있겠느냐』 『결국 북측에 모든 것을 양보해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아니냐』 『김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것만으로 끝나 김일성에게 6·25의 면죄부만 주는게 아니냐』는등의 일부 비판론을 의식한듯 정상회담성사와 그 의의에 대한 대국민 홍보에도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김대통령은 이날 본관 집무실에서 폐쇄회로 TV화면을 통해 예비접촉 진행상황을 지켜본데 이어 이날 저녁 판문점에서 돌아온 이홍구수석대표를 비롯한 우리대표단 및 한승주외무장관 박관용비서실장등과 만찬을 함께 하며 예비접촉 결과를 보고받고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도 김대통령은 남북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가 한반도 역사를 바꿀지 모를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고 역설하고 철저한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이날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8시간내내 예비접촉 진행상황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했다. 청와대는 이날 한차례 회담에서 타결을 보는게 최선이며 2차로 넘어가면 다시 3차이상으로 길어지고 그만큼 회담성사도 어려워진다는 판단에서 진행상황을 초조하게 지켜 보았다.
청와대는 당초 김용순북한측 수석대표의 기조발언에 「선결요건」해결요구가 없자 안도한데 이어 우리가 수정제의한 「25일 평양개최」에 북한측과 의견접근을 보자 반색했으나 곧 이어 우리의 상호주의원칙에 따른 「2차정상회담 8월 서울개최」에 북측이 난색을 표하자 일순 긴장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이날 박실장이 집무실에서 직접 정세현통일비서관과 함께 남북대화사무국을 통해 회담상황을 보고받으며 일일이 점검했다.
청와대는 하오들어 회담 정회시간이 길어지고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긴장은 하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관적인게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타협이 안된다는 의미보다도 양측이 타결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증좌라는 것이었다.
○대화록 챙기며 촉각
○…이영덕총리는 이날 남북대화사무국을 통해 들어오는 남북대표단의 대화록 전부를 매시간 전달받아 챙기며 촉각을 곤두세우다 하오 늦게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총리는 『남북의 대표들 모두가 고생했다』며 『국민의 기대가 컸던 만큼 예비접촉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성사돼 기쁘다』고 참모들에게 소회를 피력했다.
총리실의 한 간부는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었으나 우리측이 대폭 양보해 합의가 이뤄진 것은 문민정부의 자신감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오늘은 민족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루종일 가슴졸여
○…주무부처인 통일원은 이날 시간대별로 낙관·비관을 오갔던 판문점상황에 따라 하루종일 가슴을 졸이는 모습이었다. 관계자들은 통일원이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부처일 뿐만 아니라 이홍구통일부총리가 성사의 주역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통일원이 생긴 이래 가장 좋은 날』이라고 즐거워했다.
한편 통일원에는 이날 예비접촉 결과를 미리 알아보려는 일반인의 전화문의가 쇄도했다. 이 중에는 아예 『주식을 많이 샀는데 타결이 안되면 큰일이다』 『주식을 새로 사야 하느냐, 팔아야 하느냐』는등 주식투자자들의 「자문」도 적지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동국기자】
◎“상호주의원칙 중요성 북도 양해”/이 통일부총리 회견”
【판문점=유승우기자】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양측대표는 이날 합의서 서명을 마친뒤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에 따른 서로의 입장을 밝혔다.
우리측 이홍구수석대표는 『양측 정상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타결이 가능했다』면서 『정상회담은 우리민족이 세계적 추세에 맞춰 대결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석대표는 2차정상회담과 관련, 『우리측이 상호주의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데 대해 북측도 이해하고 양해했다』며 『다음 회담장소는 두 정상이 직접 만나 논의,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수석대표는 2차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것은 합의문을 논리적으로만 해석한 것이며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며 『우리가 원하던 것이 있고 북의 희망사항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대체로 잘된 것이다』라고 회담결과를 설명했다.
북한의 김용순단장은 『늦기는 했지만 이견이 좁아져 합의서에 서명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합의사항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공동노력하자』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남·전두환대통령·국정연설)=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의 조건없는 상호방문 제의
▲81년1월19일(북·김일조국평화통일위원장·성명서)=1·12제의는 분열책동이므로 거부한다는 성명발표
▲81년6월5일(남·전대통령·평통정책자문회의개회사)=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을 다시 제의하며 장소·시기를 북측에 일임
▲81년7월1일(북·김일성주석·전남한정치인협회창립25주년기념사)=전대통령의 정상회담제의거부
▲83년1월18일의 국정연설·85년6월5일의 평통자문회의개회사·85년8월15일의 광복절경축사·85년10월12일의 국회시정연설·86년3월1일의 3·1절기념사·87년6월3일의 평통자문회의개회사등에서 전대통령은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회담개최를 계속 촉구
▲88년2월25일(남·노태우대통령·취임사)=김주석과의 대화용의 표명
▲88년8월15일(남·노대통령·광복절경축사)=조속한 시일내 조건없는 정상회담 제의
▲88년9월8일(북·김주석·정권 창립 40주년기념전야제 연설)=연방제에 기초한 통일방안등의 협의를 위한 남북정상회담용의 표명
▲88년10월18일(남·노대통령·유엔총회연설)=평양방문 및 정상회담용의 표명
▲89년9월11일의 국회연설·90년1월10일의 연두기자회견·90년3월1일의 기념사등에서 노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계속 제의
▲90년6월13일(북·남북고위급회담등 남북접촉의 협상단·전화통지문)=한·소회담을 분열책동으로 비난하며 정상회담거부의사 표시
▲90년10월18일(북·김주석·강영훈총리면담)=남북고위급회담의 우리측대표인 강총리에게 조속한 정상회담개최의사 표명
▲92년7월1일(남·노대통령·월스트리트지회견)=북한의 핵무기개발등이 현안임을 지적하며 임기중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힘.
▲93년2월25일(남·김영삼대통령·취임사)=정상회담 제의
▲93년5월25일(북·강성산총리·전화통지문)=특사교환을 통한 정상회담논의를 제의
▲93년6월3일(남·김대통령·취임1백일기자회견)=북한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는 의사 표시
▲94년2월25일(남·김대통령·취임1주년회견)=핵문제와 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사 천명
▲94년6월16∼17일(북·김주석·카터전미대통령면담)=남북정상회담의사 표명
▲94년6월18일(남·김대통령·〃)=김주석 제의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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