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의 만남은 닫혀있는 남북협상의 창문을 열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대북협상전략은 어떤 것인가? 우선 북한이 남북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된 동기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김일성에게 「사람」을 보내는 문제를 적어도 지난 봄부터 생각해 온 것같다. 필자가 미국 고위관리로부터 「사람」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은 것은 5월3일이었다.
카터의 평양방문계획이 알려진 6월9일 필자는 워싱턴에 있었는데 6월10일 상오 백악관에서 있었던 정책회의에서는 주로 대북제재결의안의 내용이 토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6월10일 하오 필자는 북한이 핵문제에 협조하는 경우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S)」라는 표현 이상의 당근을 약속하는 신호를 아직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국정부 고위관리로부터 직접 확인했다. 그러니까 카터가 김을 만나기 전까지는 북한이 핵투명성을 보장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카터가 북한에 「당근」의 내용을 분명하게 설명해준 것은 우연일 수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미북수교에 대한 미국내 보수세력의 반대 때문에 상황전개에 따라 점진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는데 카터가 자신의 판단으로 김에게 수교를 약속함으로써 기정사실화되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미국정부는 처음부터 핵문제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을 때 김에게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내보이면서 선택을 요구한다는 협상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일성은 채찍과 당근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당근을 택했다는 점이다. 김은 손익계산을 할 줄 아는 통치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협상은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이기적 합리성을 전제할 수 있다. 즉 당근과 채찍의 전략은 앞으로도 계속 타당하다. 물론 제재는 효과가 없다느니 또는 위험하다느니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잠재적 위협이 전제되지 않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동시에 긍정적 인센티브도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이미 작년 6월19일 한국일보에 실린 칼럼에서 「인센티브를 더욱 확실하게」해야 한다고 했고 금년 3월22일 또다시 북한이 「핵옵션과 교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만한 그 무엇을 줄 수 있을 때 협상에 의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협상은 상대방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손익계산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둘째로 협상목표는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관념적 표현에 사로잡히면 안된다. 통일, 민족화합, 모두 듣기 좋은 표현들이지만 협상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모든 협상은 상대방의 행태에 변화를 유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단계에서는 핵문제 해결이 급선무다. 의제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일관되고 분명하게, 그러나 논쟁없이 설명해야 한다.
핵문제에 대해 한국은 북의 과거에, 미국은 현재와 미래에 집착한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간에 모순이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도 북의 과거를 불문에 부칠 수 없고 한국도 과거문제가 해결 안됐다고 현재와 미래문제의 해결까지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한국과 미국은 핵문제를 포함한 대북협상에 대해 포괄적이고 심도있는 협의를 할 것으로 믿는다. 특히 대북 경협문제에 대해서도 정책조정이 필요할 줄 안다.
미국의 대외원조법(THE FOREIGN ASSISTANCE ACT)은 공산국가에 대한 경제원조를 금지하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마르크스레닌주의」국가에 대한 투자보장을 못하도록 되어 있고 국제금융기구의 미국대표이사들은 「인권」유린국가에 대한 원조를 반대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변화가 없는한 미국으로부터 경협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경수로문제도 원자로기술의 해외이전에 관한 미국의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상당기간은 미국이 직접 북한에 제공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방법이 있다면 한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미국이 동의하는 것은 가능하다.
북한은 아직 미국의 국내법절차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되면 북한도 경협은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협상은 협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협상이 결렬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협상의 주도권을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물론 협상은 타협과 절충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협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균형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지금 남과 북의 힘의 균형은 문제가 안될 정도다. 역사의 방향은 이미 분명해졌다. 미래는 우리에게 속한다. 협상의 궁극적 목표는 북녘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와 함께 풍요롭고 자유로운 미래를 공유할 수 있도록 북한통치자를 설득하는데 있다.<사회과학원장>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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