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감염질환에도 속수무책/박테리아 내성화… 「특효」 페니실린도 “무용지물” 「항생제내성」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과거 항생제로 쉽게 치료되던 박테리아(세균) 감염질환들이 더이상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가 됐다. 의료계는 페니실린을 비롯해 기적의 항생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21세기가 시작되기전 모든 감염질환을 정복하리라 장담했지만 무분별한 항생제 오·남용으로 거의 대부분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고 이제는 「항생제의 종말」을 예상하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항생제 오·남용의 부작용과 실태를 2회로 나눠 다룬다.【편집자주】
최근 간경화증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이모씨(67)는 갑자기 폐에 고름(농흉)이 잡혔다.진단결과 「녹농균」감염증세로 밝혀졌으나 어이없게도 항생제가 듣지 않아 환자는 20일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주치의였던 김준명박사(내과)는『「세팔로스포린」항생제등 무려 8종의 항생제를 단독 혹은 복합투여해 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서『이처럼 어떤 항생제에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감염환자들을 한달에 1∼2명은 보게 된다』고 말했다.
녹농균외에도 거의 모든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최강원박사(내과)는 『인류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면 할수록 박테리아(세균)도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내성을 보이고 있다. 내성을 대물림한 박테리아는 웬만한 항생제에는 끄덕도 안한다. 이를 죽이기 위해 인간은 보다 강한 항생제를 계속 내놓고 있지만 박테리아의 빠른 내성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가 내놓은 첫 특효약이자 80년대까지 폐렴이나 뇌막염의 탁월한 치료제로 사용됐던 페니실린은 대표적인 예이다. 강남성모병원 강문원박사(내과)는 『전체 폐렴구균의 70%가 페니실린에 내성을 나타내고 있어 아예 폐렴환자가 오면 처음부터 「세팔로스포린」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좋던 약이 내성을 키운 박테리아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패혈증의 대표적 원인 박테리아가 되고 있는 「포도상구균」에 대해 의사들은 특히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장기입원환자에게 수술후 상처 감염이나 폐렴등을 일으키고 있는 「포도상구균」의 페니실린 항생제 내성비율(MRSA발현율)이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87년 30%에서 94년 70%로 뛰어올랐다. 지난해까지 40%선을 유지하던 서울대병원도 이달들어 갑자기 63%로 뛰어올라 병원관계자들은 원인규명에 골몰하고 있다.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항생제가 어떤 종류이며 환자층이 무슨 질병이냐에 따라 항생제 내성비율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준명박사는『항생제 내성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것 같다. 이러다가 10∼15년후가 되면 항생제가 박테리아에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징후들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포도상구균은 이제 페니실린외에 대부분의 다른 항생제에서도 내성을 나타내 「반코마이신」과 「타이코플라민」등 2가지 항생제만이 치료제로 가능할 뿐이다. 고려대의대 안암병원 박승철박사(내과)는 『마지막 보루인 반코마이신에마저 내성이 생긴다면 포도상구균에 의한 패혈증에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신장이식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이식수술의 실패가 아닌 「포도상구균」감염으로 인한 패혈증때문에 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패혈증을 일으키는 장구균에도 의사들은 항생제가 「안듣는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문원박사는『페니실린과 반코마이신을 사용하고 있으나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아 가나마이신등 아미노배당체 항생제를 병합 투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계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다뤘던 「살 파먹는 박테리아」도 의료계일각에선 항생제 내성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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