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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의 허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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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의 허실(사설)

입력
1994.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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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카터전미대통령을 통해 김영삼대통령과 조건없는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김대통령이 이를 즉각 수락한 것은 매우 주목할만 하다. 사실 탈랭전체제―세기적인 데탕트시대에 남북한의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관계개선과 통일을 저해하는 핵심현안들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문제는 그동안 정상회담 제의를 반대, 외면해 왔던 김일성이 핵위기감이 팽배한 이 시점에 왜 느닷없이 먼저 제의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는 저들의 진의를 심중히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김일성의 2중성과 태도표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날 5∼6공 정권을 군사파쇼 독재정권이라고 상대하지 않았던 김일성은 순수 민간정권인 김영삼정부출범 후 미국등 우방들과 공조하여 북핵저지에 나서자 「사대적 매국노정권」 「괴뢰도당」 「역도」 「가짜 문민정권」 「6공2기 독재정권」이라고 중상 폭언을 하면서 재야와 운동권 학생들에게 정권타도를 선동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김일성이 정상회담을 제의한 속셈은 분명하다. 국제적 제재와 압력을 피하기 위해 카터를 맞아 당장이라도 개발중인 핵을 몽땅 폐기할 듯이 아리송한 평화제의들을 쏟아내어 미국에 화해의 손짓을 한 그는 정상회담 역시 국제사회에 위장평화의지를 선전, 과시하기 위해 제의한 것이다.

 원래 국가간 정상회담은 고위실무자간에 핵심 현안들을 90% 이상 타결한 이후 마지막 절충 또는 우의를 다지기 위해 갖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현재 남북한간에는 우호·협력등 어느 것 하나 합의된 것 없이 「불바다」와 「전쟁운운」의 적대관계가 지속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김일성과 만나려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즉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어 상호사찰을 통해 북한의 핵투명성이 완전 검증되고 기본합의서 정신에 의한 상호불가침, 주권존중, 내정불간섭등을 확인하며 경제협력과 이산가족재회문제등도 아울러 합의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상회담은 이같은 합의정신을 재확인하는 한편 장차 평화적인 통일문제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현안들의 선결없이 정상들이 만나는 것은 한낱 선전용에 불과하며 오히려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 언제 어디서든지」 「빠른 시일 안에 조건없이」라는 말은 일응 매우 달콤하며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합의볼 듯 하지만 단순한 만남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닌 「함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김일성이 카터를 맞아 핵개발상황은 여전히 숨긴 채 쏟아낸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확산 금지조약잔류, 통상적인 핵감시장치작동의 허용, 실종미군유해수색을 위한 기구설치에서 남북정상회담등 일련의 제의들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정상회담전의 선결과제 해결도 그렇지만 북한의 상투적인 껍데기 평화제의에 들뜬 미국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전면적인 핵사찰이 없는한 3단계회담을 늦출 것을 분명히 촉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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