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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공화국/남대희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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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공화국/남대희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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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문제도 있고 나라 안팎이 온통 뒤숭숭한데 재벌총수들이 골프를 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시기도 안좋지만 대통령도 안하는데…, 좀 신중해야지요』 『한번 결정했으면 소신껏 밀고 나가시오…』 재벌총수들의 골프회동을 추진해온 전경련은 15일 출입기자 전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여론을 파악하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당초 비공개를 원칙으로 은밀하게 추진해온 골프모임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당황한 전경련은 취소냐 강행이냐 여부를 여론에 뛰워 결정키로 한 것이다. 결과는 신중론과 소신파가 50대 50. 결국 임원회의에서도 묘수가 나오지 않자 16일로 최종결정을 미뤘다.

 요즘 재계는 이렇다.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고 애처롭기까지 한 전경련의 호들갑은 기업과 재계, 나아가 정부의 옹색한 현실을 극명하게 나타내준다. 잘 돼도 여론 탓, 못돼도 여론 탓―. 어느새 여론이 우리경제를 움직이는 최고실력자로 둔갑하면서 경제계는 온통 「여론사냥」에 땀을 쏟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은 여론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를 견제하는 기업들은 국민정서에 호소하는가 하면 주무당국도 정책의 향방을 여론에 의지하고 있다.

 골프모임은 일례에 불과하다. 공기업 민영화, 기업의 신규사업진출 및 사업다각화등 굵직굵직한 경제계 현안들마저 여론이라는 비경제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당초 몇몇 기업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는 공개경쟁이라는 원칙아래 기존 방침대로 밀고 나가겠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정부는 대기업들의 과당경쟁이 예상 밖의 파문을 일으키자 순식간에 궤도수정에 나섰다. 한비입찰에 참여했던 삼성그룹은 동부그룹의 공세와 담합설등 흉흉한 여론 때문에 당일 밤 입찰포기를 결정했다. 삼성의 승용차사업진출유보, 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정의 막판 뒤집기등도 여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물론 여론이 올바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줏대도 없고 논리도 없이 국민감정에 장단만 맞추는 「여론공화국」의 앞날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예측불가능한 정책방향과 여론에 따라 흔들리는 기업의 운명은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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