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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묻은 개털떼려다 누명/「가위꺼낸 여인」 옥살이 9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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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묻은 개털떼려다 누명/「가위꺼낸 여인」 옥살이 99일

입력
199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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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분위기·주위권유에 “강도자백”/법정서 무죄… 수사허술 또 드러나 여덟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장모양(21·학원생)은 곧잘 옷에 묻는 강아지털을 떼내는데 요긴한 접착테이프와 테이프를 자르는 작은 미용가위를 핸드백에 넣고 다니곤 했다. 이 습관 때문에 그는 강도상해범으로 몰려 99일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장양은 2월 25일 하오 6시30분께 서울 남대문시장 앞을 지나다 아버지가 동남아 여행에서 남겨 와 바꾸어 쓰라고 준 핸드백속의 3백달러가 생각나 암달러상을 찾았다. 빌딩안 사무실에서 암달러상 이모씨(75·여)에게서 달러를 바꾸던 장양은 이씨가 돈을 세는 사이 감색바지에 유난히 많이 달라 붙은 강아지털을 떼내기 위해 평소처럼 핸드백에서 가위를 꺼내 접착테이프를 잘랐다.

 순간 가위와 테이프에 놀란 이씨는 느닷없이 『강도야』라고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장양은 엉겁결에 테이프를 든 손으로 이씨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이씨가 머리채를 잡자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 나가다 달려온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이씨는 이 와중에 넘어져 전치 2주의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경찰에서 장양은 경위를 설명했으나 담당형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암달러상 할머니는 『가위를 들이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해 목숨만 살려 달라고 했다』고 「교과서」처럼 진술했다. 고함소리만 듣고 달려 왔던 목격자들의 진술도 불리하긴 마찬가지였다. 장양은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위압적인 분위기에 크게 당황, 침묵으로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에 송치된 뒤 장양은 『자칫하면 살인미수가 될 수 있으니 죄를 시인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범행을 자백했다. 아버지도 용서를 빌어야 풀려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면회를 와 『디스크를 앓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말하라』고 귀띔했다. 결국 장양은 강도상해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4년이 구형됐다.

 법정에 선 다음에야 장양은 사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었다.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변호사의 충고였다. 피해자 이씨도 변호사의 끈질긴 질문에 『10여년전 강도를 당한 적이 있어 장양이 테이프를 꺼내 가위로 자르는 것을 본 순간 강도로 생각했다』고 당초와는 다른 진술을 했다.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우의형부장판사)는 지난 4일 보석을 허가했다. 구속된지 99일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4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냘픈 여성 혼자 암달러상에게 접착테이프를 입에 붙이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공소내용이 사회통념상 납득되지 않는다』며 『전과가 없는 21세 미혼여성이 갑자기 강도로 몰려 체포·구속됐을 경우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선처를 받아 빨리 풀려나기 위해 혐의사실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려고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양은 『난생 처음 경찰에서 조사받으면서 무섭기만 했다』며 『결백을 입증해 준 법원에 감사드린다』고 울먹였다. 장양을 변호한 강현중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장양의 입장을 들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였어도 무고한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검·경의 구태의연한 인권의식을 나무랐다.【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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