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만 당한셈… 영수회담 다신 안한다”/민주/“오해일뿐”… UR비준 등 현안많아 고민/민자 정국이 심상치 않다. 상무대국정조사가 파행을 겪고 있고 야당은 극한행동을 불사할 태세다. 여야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여야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어 정치권의 대화능력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이기도 하다. 점점 심각해지는 북한핵문제와는 동떨어진채 정치권은 꼬여가기만 한다.
정치권에는 이달말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국회의장 및 상임위원장임기가 끝남에 따라 14대 국회의 2기 원구성을 6월말께는 마쳐야 한다. 국회제도개선을 위한 국회법개정도 해묵은 과제다. 신임대법관 6명의 임명에 따른 동의안처리 문제도 놓여 있다. 곧 이어 뜨거운 감자인 UR비준도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정기국회다. 여야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민감한 현안들이 잔뜩 쌓여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대치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기택 민주당대표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의원과 대표직을 걸고 국정감사 및 조사법개정을 관철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식이라면 김영삼대통령과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대표는 김대통령과 여당이 계속 말뒤집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은 완전히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김대통령은 『여소야대 당시 만든 국조법의 잘못된 부분을 개정하자』는 뜻을 밝힌 것이지 야당이 말하는 수표추적등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대표가 당내입지 또는 오해 때문에 확대해석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여야의 이같은 평행선은 당분간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미 「선국조법개정」이라는 당론에 따라 상무대국정조사를 중단키로 했고 민자당은 이에 아랑곳않고 단독조사를 진행중이다. 일단 대화채널은 닫혔다.
여야의 감정대립은 단순히 말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것만은 아니다. 사상처음 국회에서 제기된 정치자금의혹조사가 오히려 야당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 근본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여권은 이번 조사에서 눈에 뜨일 정도로 「올코트 프레싱」을 했다. 야당은 어찌보면 망신만 당한 셈이다. 게다가 총무경선등에서 당내입지가 약해진 이대표가 영수회담을 통해 더욱 체면을 구겼다는 사실이 민주당을 강경으로 몰아가는 듯 하다.
민주당은 13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정조사등 일련의 현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물론 야당도 북한핵문제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지는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당이 이런 위기상황을 국내정치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강경대응이 채택될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여야의 화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쪽도 파국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점이 한 가닥 희망으로 남아 있다. 민자당은 향후 국회일정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정치력」을 확보해야만 하고 민주당 또한 북한핵변수가 남아 있는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결국 양당은 국정조사의 파행이 계속될 이번주 동안 냉각기를 가진 뒤 6월임시국회를 위한 조정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조정기의 접촉에서 여야가 어느 정도의 성의를 보이느냐에 따라 하반기정국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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