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족 3개월이 넘도록 입을 꽉 다물고 있던 대통령직속의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첫 음성을 들으니 반갑기는 하다. 그런데 실상 내용들을 훑어보면 실망이 더욱 크다. 하기야 관련 소위원회별로 산만하게 논의된 내용들을 대충 정리한 것으로, 개혁 시안 단계에 못미치는 구상들이랄 수 있다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현행 단선의 6―3―3―4학제를 다양화하고 복선화하겠다는 구상은 옳다고 본다. 본란에서 이미 「학제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한바 있듯이 너무 시대에 뒤진 학제를 개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혁할 학제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며 철학적이면 곤란하다. 교육을 개혁하는데는 긴 안목의 철학적 식견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제도 자체는 너무 복잡하면 곤란하다.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제도를 개혁, 학생을 뽑는 시기를 다양화하고 한 대학교 안에서 단과대학별 입시를 치르게 해 복수지원을 허용하겠다는 구상은 우리 현실에 비춰 너무 이상적이다. 학제가 잘 개혁돼 대학을 가는 인문계와 취업쪽으로 가는 실업계 교육이 제대로 되면 입시제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근본을 고치는데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
고교평준화를 전폐하지 않고 고교진학방식을 2원화(학군별배정과 경쟁선발제)해 보겠다는 것은 옳다. 고교내신제를 상대 평가에서 학업성취정도에 따른 절대 평가로 바꾸겠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 평가내용을 대학들이 활용하는 것을 다양화시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중등학교 졸업자 전원에게 고등교육수준의 직업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식의 구상은 의욕 과잉이다. 실업계고교의 교육 내실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교육 재정확대방안이다. 현재의 교육세나 국가예산규모로는 교육 재정을 GNP5%까지 확보할 수는 없다. 토지관련세에 새로이 부가하는 방식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개혁안을 마련한다해도 그것을 시행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것은 휴지화할 수밖에 없다. 재원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개혁시안 마련에 임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이 하나 있다. 교개위는 이상의 구상들을 이달말까지 시안화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공청회에 부쳐 최종 개혁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이러한 방법론에는 순서가 바뀐 부분이 있다. 시안을 대통령에게 보고 하는 것보다는 공청회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할 때 잘못된 선입견이 끼여들면 공청회를 백번 해본들 고쳐지지 않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게 하찮은 것같이 보이지만 자칫하면 본과 말이 전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개혁안마련에는 방법론 또한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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