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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 되짚는 여정/오태석작 「자전거」/이혜경(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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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 되짚는 여정/오태석작 「자전거」/이혜경(연극평)

입력
199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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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이 지난 4월부터 「오늘의 작가 시리즈」를 통해 한국 작가중 연극성이 가장 뛰어난 오태석의 대표작 5편을 연이어 소개하고 있다. 그중 세번째로 올려진 「자전거」에서 오태석은 자신의 기억안에 꼬깃꼬깃 접혀져 있던 6·25의 상흔을 독창적인 극적 구성으로 조금씩 드러낸다. 장기 결근했던 윤서기가 동료 구서기를 이끌고 여름날 산길을 더듬으며 병가의 원인이 되었던 42일전 일의 자초지종을 되짚어보는 것이 자전거의 기본틀이다. 윤서기의 회상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외딴곳에 숨어사는 문둥이 내외, 그들의 두딸,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거위집 남자, 양조장 청년, 장꾼들―이 두런두런 주고받는 정감어린 사투리에 담긴 으스스한 시골밤 풍경. 그들의 입을 통해 전쟁의 상흔이 하나 둘 드러난다. 그날은 6·25때 북한군이 철수하며 마을 장정 백여명을 등기소에 가둔채 불질러 몰사한 사람들의 제삿날인데 명령을 못이겨 불을 지른 당사자 윤서기의 당숙은 이날만 되면 죄의식때문에 사금파리로 얼굴을 그어대며 피투성이가 된다.

 희곡이 요구하는 시간과 공간의 복합성을 간결하게 담아낸 이태섭의 무대장치가 인상깊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극장을 가득 메운 짙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정사각형의 무대, 사방에는 홈이 파여있고 좁은 다리 두어개가 출입구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의식 어딘가에서 아직도 녹아지지 못하고 버겁게 떠다니며 날카로운 모서리로 폐부를 찌르곤하는 아픈 기억들, 그 안에 웅덩이같이 고여있는 고통의 편린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의 혼재, 그들을 연결시키는 이음새의 불투명성등을 극명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다층적인 시간구조와 미스터리극적인 장치, 극중극의 요소들, 삽화들의 병렬식 배치등의 복합적인 극의 전개를 통해 오태석은 과거의 상처를 되짚어 가는데 필요한 단서들을 내비치고 있다. 평소 희곡을 성실히 무대화하기로 정평있는 연출가 김철리는 이번에도 작가의 속내를 잘 짚어내 관객들에게 또박또박 전달한다. 그러나 그뿐, 그는 관객을 위해 오태석의 희곡을 쉽게 풀어주는 친절은 삼간다. 다만 대지가 뿜어내는 한인듯 독기인듯한 안개를 다시 피워올리며 자전거 여정을 마무리한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문득 안개속으로 되돌아가 각자의 기억, 혹은 공통의 아픈 상흔을 짚어갈 상상의 자전거 페달을 밟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하는 비상한 공연이다.<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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