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속옷차림으로 호텔을 배회한다. 관광지는 새치기해 들어간 후 허겁지겁 증명사진을 찍고 뱀탕집등으로 몰려가 큰소리로 떠들며 몸보신을 한다. 공보처가 세계 34개지역의 해외공보관들을 통해 수집한 일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벌이는 추태의 한 전형이다. 일부라고 하지만 매년 2백만명 이상이 해외나들이를 하는 국제화시대에 아직도 이러한 관광객이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추한 모습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싹쓸이 쇼핑에서부터 보신관광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어느나라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 한번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지만 우리는 이 기간이 너무나 긴데다 추한 모습을 보이는 관광객의 수는 줄었다고 해도 행태는 더 다양화됐다는 데 문제가 있다.
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실시된 이래 그해에 1백21만명이 출국한 후 4년만인 92년에 2백4만명이 나가 해외여행 2백만시대를 맞았고 3백만시대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대결이란 특수한 상황과 경제적 여건으로 해외여행조차 통제를 받아야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꿈같은 현실이다. 이젠 해외여행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게끔 됐지만 여행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올바른 한국인상을 심는 것은 우리국민 모두의 몫이다.
박물관에 들어가 전시물은 둘러보지도 않고 정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관광지 바위등에 자기 이름을 새기며 조금 윤택해졌다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멸시하는 몰지각한 행위는 이젠 과거 속에 묻어야 한다. 여행은 돈으로 한다는 인식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3백33만명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돈이 29억달러인데 비해 우리는 2백41만명이 해외에 나가 자그마치 35억달러를 소비했다. 그만큼 돈을 헤프게 쓴 것이다.
이같은 우리의 일그러진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해외여행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함께 여행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해외여행은 마시고 먹고 떠들고 쇼핑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을 익히고 우리를 알리는 것이란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제화는 국민개개인이 국제인이 되는데서 시작된다. 외국을 적당히 둘러보는 여행에서 외국을 아는 여행으로 목적을 보다 세분화해야 한다. 한 도시의 집중탐구나 미술관 순례등 유익한 계획을 세워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쇼핑이나 눈요기 중심의 여행일정을 짜온 여행사의 의식변화를 동반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름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자. 의젓한 한국인상을 외국에 남겨놓고 돌아올 때는 가방속에 외제물품 대신 외국을 익힌 수확을 담아가지고 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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