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것과 크기·구조 흡사/대규모 방 가운데 신석 박혀있어/향로 제작시기 앞당길 근거 주목 백제 금동롱봉봉래산향로가 발굴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건물유적지에서 백제사직터일 가능성이 높은 특이한 구조의 건물터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건물터는 고구려 중기 종묘사직터인 동대자 유적(중국 길림성 집안현 소재)과 크기와 구조가 흡사해 백제사직터일 가능성이 높다. 향로 발견지점에서 북동쪽으로 15 가량 떨어진 이 건물터는 동서 37.4m, 남북 18m, 높이 30㎝의 동일한 기단 위에 두개의 커다란 방이 동서로 위치하고 사방에 퇴칸이, 두 방 사이에 남북방향의 통로(폭 2백20㎝)가 나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발견된 두 방터(제 5.6m 건물터)는 각각 동서 14.3m , 남북 9.7m 가량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시대 방터(대들보 길이 기준)로는 제일 큰 것이다.
학계는 백제사직터라는 주장이 입증될 경우 지금까지 7세기 초로 추정해온 백제금동향로의 제작시기를 반세기 가량 앞선 6세기 중반(538년께)으로 확증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주목하고 있다.
이번 발굴의 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장경호 문화재연구소장은 3일『발견된 건물터는 동대자유적(동서 35m×남북 18m)과 크기가 거의 같고, 하나의 건물에 기능과 구조가 완전히 다른 두 공간이 공존하는 점, 이 중 한 방의 가운데 신석이 박혀있는 구조 등이 일치한다』며『발견된 건물터도 백제사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위지」동이전 고구려조에는『좌우립대옥 제귀신우사령성사직(좌우편에는 큰 집을 세워 귀신과 영성사직을 제사했다)」이란 기록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왕권의 상징인 용과 봉황이 주요 소재인데다 섬세하고 다양한 의장, 향로로는 큰 크기(높이 64㎝) 등으로 보아 왕실유물로 추정돼 왔다.
장소장은 또『발굴과정에서 부여시대(538∼660년)에는 쓰인 적이 없는 공주시대(475∼538년) 와당이 많이 발견돼 이 건물이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538년) 직후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왕조시대에는 나라를 건국하거나 천도 직후 왕궁과 함께 종묘사직을 먼저 짓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같은 사실은 발견된 건물터를 백제사직으로 볼 수 있는 또다른 근거가 되고 있다.
신광섭 발굴단장(부여박물관장)은 발굴유물의 성격에 대해『백제사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백제 특유의 절 터 배치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능산리 고분군에 붙어 있어 원찰(죽은 이의 명복을 빌던 법당)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부여 능산리 건물지 유적발굴은 7월13일까지 3차발굴이 완료되고, 유적지의 성격규명이 중요해 올 하반기에 다시 4차발굴이 진행될 계획이다.【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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