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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생명공동체/김지하 칼럼(살림의 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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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생명공동체/김지하 칼럼(살림의 길:6)

입력
199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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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는 한나라아닌 “인류 위기”/한·중·일 오랜전통 공유불구/핵확산·오염 가속으로 고통/각나라 민초들 힘합쳐 정보교환·대화… 지구평화·자연회복 나서야 동북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을 잔뜩 움켜쥐고 미국과의 협상에 유일한 카드로 사용하고자 한다. 북한핵은 일본의 핵개발을 자극하고 중국의 핵을 보장하며 남한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만들려 하고 있다. 중국이 수폭실험을 계획하는가 하면 일본은 몬주의 고속증식로에 이어 도카이무라에 플루토늄 70㎏을 축적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무효이며 핵재처리시설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모두들 미친것일까? 핵이 도대체 무엇인데 가지려고들 안달하는것일까? 동북아는 19세기적인 구체제로 되돌아가는것일까?

 동북아에는 냉전체제 해체이후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 새로운 비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중·일 국가리더십을 사로잡고 있는것은 아직도 일국주의적·현상유지적 체제의식이며 낡은 국가주의적 철학이다. 가트(GATT) 해체 이후 한·중·일 삼국의 리더십은 저마다의 국가이익에 따라 제각기 다른 동북아질서를 꿈꾸고 있으며 서로 다투어 낡아 빠진 부국강병책을 강행하고 있다. 따라서 핵을 갖는것은 당연한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미묘하고도 예민한 지점이다. 문명사적으로 보아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맞부딪치는 단층에 위치하고 있다. 일국주의적·현상유지적 동북아질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일본의 침략주의적 도국근성과 중국의 대국주의적 팽창주의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것은 한국민족 뿐이며 일본과 중국의 민초들 뿐이다. 한·중·일 삼국의 핵경쟁은 결과적으로 한국민족과 일본·중국 민초들의 생명을 파괴하는것 밖에 나올것이 없다.

 한·중·일 삼국의 민초들 자신의 생명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한 때이다. 낡은 일국주의적·현상유지적 국가철학에 매몰돼 있는 국가리더십에 모든것을 맡겨둘 때가 아니다. 민초들 자신의 새로운 동북아질서에 대한 구상과 비전이 나와야 할 때며 이로써 각국의 리더십을 설득하고 압박하여 동북아 전체에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가져오도록 노력할 때가 되었다.

 동북아가 어떤 곳인가? 문화사적으로 보아 유교·불교·도교라는 공동의 문화를 누천년간 공유해온 지역이다. 그리고 인류는 동북아의 이같은 전통문화로부터 지구평화와 인류생존의 새로운 가치관이 창조될것을 목마르게 기대하고 있다.

 동북아는 문명의 새로운 중심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제조업기지이며 최고의 교역량, 최고의 생산력을 자랑하는 곳으로 떠올라오고 있다. 이곳에는 15억이라는 엄청난 인구가 밀집하여 살고 있다. 이같이 밀집되고 긴장된 세계중심을 가공할 핵이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자. 이것은 15억의 생존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인것이다. 동북아 삼국의 양심적인 민초들은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것인가?

 동북아 삼국의 민초들의 자각된 힘도 옛날과는 다르다. 몬주의 고속증식로등에 대한 일본 환경주의자들의 저항, 대만의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2만명 대만 민초들의 시위, 핵폐기물 저장소 설치에 반대하는 한국의 안면도와 양산·울산·죽변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등은 나날이 높아져 가는 민초들의 반핵·반원전 의식을 보여준다. 동북아와 같이 인구밀집된 지역에서 체르노빌이나 드리마일의 비극이 터진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한 일이다. 동북아 전역에서 핵과 원자력발전소는 철거되어야 하며 장기적이긴 하지만 지역의 대체에너지 시스템, 풍력, 조력, 태양열과 생물에너지 시스템이 건설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동북아의 과학적 지혜가 총동원되어야 할것이다.

 얼마전 중국의 중경시에 온종일 먹물같은 산성비가 내려 흰 건물이 모두다 회색으로 변했다 한다. 중국의 조악한 산업화의 급진전은 중국만이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전면적인 생태계 파괴로 몰아넣고 있다. 황해는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으며 동북아대기는 중국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로 전면 오염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위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태위기는 일국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한 기업의 문제이거나 한 시민의 무절제한 소비행태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것은 세계 인류와 지구 전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가치관과 생산·생활양식 즉 문명의 문제다. 새로운 생태적 세계관, 새로운 생명의 가치관과 새로운 생산양식·생활양식의 창조, 새 문명의 태동에 의해서만 지구와 인류의 생태위기는 해결될것이다. 바로 이같은 새 가치와 새 사회의 창조가 동북아에 주어진 인류사적 책임이다. 이것을 한·중·일 삼국의 민초들이 담당하자는것이다.

 나는 이제 대만을 포함한 한·중·일 삼국의 민초들에게 「동북아 생명공동체운동」을 제안하는 바이다(이것은 본디 김진현선생의 구상인데 내가 다시 제안하는것이다). 각국의 환경운동가 생태주의자 양심적인 지식인 문화인과 다수의 민초들이 서로 연대하여 동북아 전역에서 핵과 원자력발전소를 철거하고 생태계 위기를 창조적으로 극복하여 새 문화와 새 문명을 태동시키는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운동을 일으키자. 그리하여 각국의 리더십을 설득 압박하여 점진적으로 동북아 전역에 생명공동체를 기초로 하는 글로벌한 평화의 생활공동체를 건설하도록 하자.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미지수다. 민초들의 운동역량이 너무 보잘것 없다. 그러므로 동북아 생명공동체운동은 대만을 포함하여 한국과 일본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할것이다. 그리하여 차츰 중국의 민초들을 끌어들여야 할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는 미묘하고 예민하다. 그럼에도 세계화추세는 한일간의 보다 긴밀한 교류를 요구하고 있다. 한일간의 문화개방은 물론 단계적, 조건적으로 이루어질것이다. 사실 한국의 시장에 널리 그리고 깊이 침투해 있는 일본의 반생명적 저질문화는 심각한 사태다. 문화개방이 될 경우 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수동적으로 방치해 둘것인가? 어차피 한일문화 사이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하는것이 세계사의 대세요 동북아 역사의 추세다. 여기에서 일방적인 폭력저질문화의 침투나 일방적인 폐쇄적 민족주체의 고집이라는 양국의 태도는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나는 일본의 국가리더십이나 극우국수주의자와 양심적인 민초들을 구분해 본다. 사실 일제의 극악한 식민통치하에서도 미미하긴 하지만 일본 민초들 속에는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맑은 흐름이 있어 일본의 한국침략과 억압을 비판해 온 전통이 있으며 지나간 민주화운동 시절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일본내의 양심적인 인사들은 우리의 민주화운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오늘날 일본내의 개혁추세와 함께 그 흐름은 커다랗게 증폭되었다고 생각한다. 숱한 환경운동가 생태주의자 생협운동가 유기농 생명운동가 및 그 수많은 회원들, 분권자치운동가들과 지역주민들 그리고 생활자주권론자와 연방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나는 바로 그들을 향해 동북아 생명공동체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생명공동체운동으로 연대함으로써 동양의 위대한 전통문화와 종교사상 등에 기초한 새로운 생태적 세계관, 새로운 생명의 가치관을 창조해 나가야 할것이며 이같은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한일 문화교류의 주된 흐름으로 강화시켜나가야 할것이다.

 한일 민초들간의 동북아 생명공동체운동은 구체적으로 각종 환경생태관계에 관한 자료와 정보의 상시적인 교환, 빈번한 토론과 대화, 한·중·일 3개 국어와 영어로 편집되는 공동잡지의 기획, 공동의 생명문화 프로그램 제작, 동북아 전역의 핵·원전·환경문제에 대한 공동행동 및 네트워크의 창설, 새로운 생태적 대안의 공동창조,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아가 생명사상과 생명의 가치관에 입각한 동북아 근·현대사 교과서 초안의 공동편찬등을 기획해야 할것이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또한 한국과 일본내의 환경운동 생명운동도 그 철학과 실천을 확대하고 심화하게 될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일본인은 아무래도 문화·사상 방면의 창조력이 약한 듯하다. 그 방면의 창의력이 강한것은 한국인이며 일본인은 일을 꾸미고 구체화시키는 데에 오히려 자질이 있는것같다. 생명공동체운동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새 문화의 창조다. 따라서 동북아 생명공동체운동은 한국 민초들이 이니셔티브를 잡고 진전시켜야 한다. 이것은 또한 동북아와 전세계에 있어 한반도가 부여받은 지리·경제·정치·문화적인 숙명적인 소명, 반드시 무언가를 창조해야 할 위대한 소명이기도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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