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3개월동안 우리경제는 8.8%나 성장했다. GNP곡선이 3년여만에 가장 높은 좌표에 놓이게 됐다. 몇달전만 해도 구조적 불황이니 만성적 침체니 하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이제는 과열을 걱정할지언정 불황을 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경제성장률이 5%를 맴돌았던 2년간은 정부도 국민들도 너무도 힘든 세월이었다. 서민들은 날로 가벼워지는 호주머니무게에 속을 태웠고 기업인들은 치솟는 인건비와 땅값속에 높아져만 가는 재고수위를 보며 한숨쉬었다.
더 괴로웠던 것은 정부였던 것같다. 국민들의 고통이 마음아팠던 탓도 있지만 12∼13%의 성장률이 하루아침에 한자릿수로 뚝 떨어진 사실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잇단 경기부양책이 「신 3저」체제와 교묘하게 어울리면서 만들어낸 「8.8%성장」은 당국엔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8.8%성장의 뒤안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너무 짙고 어둡다. 중소기업이 그렇고 경공업이 그렇다. 「건전경제의 기틀」임을 강조하면서 출범이후 많은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았던 정부는 올해들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중소기업의 보호막을 걷고 있다. 덕분에 올들어 4월까지 쓰러진 기업은 3천개를 넘어섰고 어음부도율도 영세기업의 자금줄이 꽉 막혔던 지난해 실명제직후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빈곤」은 대기업들의 「풍요」때문에 더욱 대조적이다. 경공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경공업성장률(1.2%)은 전체 제조업성장률(9.8%)의 7분의1에도 못미친다. 8.8%성장은 사실상 자동차 조선 철강등 대기업중심의 소수 중공업업종의 독주가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당국은 『구조조정과정에서 경기회복과는 무관한 경쟁력없는 한계기업·업종의 자연스런 도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기회복세에 따라 또다시 「부양과 안정」의 지루한 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란 말만으로 쓰러져가는 「경제의 기틀」을 방치할 수는 없다. 경제가 이만큼 성숙했다면 70년대식 성장률수치의 신화에서 벗어날 때도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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