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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독재끝 비참한 말년/사망한 호네커 전동독공산당 서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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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독재끝 비참한 말년/사망한 호네커 전동독공산당 서기장

입력
199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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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구축… 철저한 공산주의자/통독후 해외탈출→송환→재판→망명생활 전후 냉전시대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을 구축한 장본인이자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던 에리히 호네커전동독 공산당 서기장(82)이 29일 망명지인 칠레 산티아고의 자택에서 영욕으로 점철된 생을 마감했다.

 이로써 2차대전후 동서독으로 갈라져 극심한 대결양상을 보였던 냉전시대의 마지막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자신이 구축했던 베를린장벽 붕괴 두달전인 지난 89년 10월 권좌에서 쫓겨나 베를린 근교에 있는 소련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호네커는 90년말 장벽탈출자 사살령 발동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듬해 3월 부인과 함께 모스크바로 탈출했다.

 모스크바의 칠레대사관에서 은신생활을 하던 호네커는 92년 7월 추방령을 받고 강제 송환돼 「살인혐의」로 베를린의 모아비트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힘든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공산주의를 한번도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않았으며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11월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호네커는 「정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법적,도덕적으로는 무죄」임을 주장했다. 결국 지병인 간암악화로 93년 1월 재판이 중단됐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부인과 딸이 살고 있는 칠레로 망명, 산티아고근교에서 말기의 암과 투병하며 시한부 인생을 살아왔다.

 1912년 독일의 자를란트주에서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호네커는 부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사상에 일찍 눈을 떠  11살때 학교에서 공산주의 세포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1929년에 공산당에 정식 가입했으며 35년 반나치저항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돼 10년동안 감옥생활을 하다 종전과 함께 소련군에 의해 석방됐다. 49년 동독국가수립이후 나치와의 투쟁경력이 인정돼 정계에 진출, 71년 당서기장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61년 베를린장벽을 건설하는 보안책임자로서 공사를 총감독했으며 서기장시절인 72년 서독과 역사적인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 동서독교류를 통한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71년부터 18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호네커는 인권측면에서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나름대로 동독을 동구권내에서는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는 통치기간에 공장이나 집단농장등을 방문해서는『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물과 불의 관계보다 더 상극이어서 결코 융합될수 없다』고 역설하는등 통일반대론자였으나 마침내 거센 민주화바람에 밀려 권좌에서 쫓겨나 러―독―칠레의 정치적 흥정물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국의 정상에서 수감생활까지 영욕을 넘나든 호네커는 결국 영웅적인 반나치투쟁을 통해 독일정신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에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 붕괴라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무너져 내린 베를린장벽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여동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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