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나태, 값싼 임금과 낮은 생산성, 그리고 관광과 매춘. 아직도 동남아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다면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다. 역동성과 성장, 산업화와 자신감. 이런 것들이 이제는 동남아를 특징짓는 어휘들이다. 「투자」는 현지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그랬다지만 말레이시아 태국은 물론 미얀마까지 덩달아 성장을 말한다. 2천년대를 향한 구호로 모두 떠들썩하다.
공항의 택시승차장에서 근교의 골프시설까지 외국인을 위한 편의확보에 온나라가 총력을 기울인다.
이같은 노력은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콸라룸푸르의 수방공항, 방콕의 돈무앙공항…. 동남아의 어느 공항이든 몸살을 앓고 있다. 투자를 위해 몰려오는 외국손님 때문에 즐거운 비명이다. 나라마다 추가 공항건설을 계획하느라 바쁘다. 인종백화점이란 말은 더이상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업인이든 관광객이든 온갖 피부색의 인종들이 거리를 메우는 동남아의 도시들. 이곳에 연일 빌딩이 올라가고 고도성장을 알리는 상가의 네온이 밤을 밝힌다.
『한국의 기술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높지요. 그렇지만 우리도 2천년대에는 하이테크를 직접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말레이시아의 외국인투자 반도체회사에서 일하는 한 현지인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차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에서 반드시 따라잡아야할 경쟁자로 바뀌고 있다.
『이 사람들 이제 눈떴어요. 우리만 주춤거리고 있지요』 방콕에서 만난 한 무역업자는 동남아의 요즘 분위기를 이처럼 간단하게 설명했다. 7년동안 서울과 동남아를 오가며 보따리장사를 했다는 그의 말에는 어떤 이론적 수치보다 분명한 체감의 경제학이 들어있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보따리무역도 이제는 점점 팔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다.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근거없는 우월감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경제개발의 도미노현상이 인도양에서 부는 사이클론처럼 지금 동남아를 덮고 있다.【싱가포르=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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