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납품대금 연체 한적없는 건실중기 부산 최고의 제조업체인 부산방직공업(주)(대표이사 이동건·사진)이 오는 25일로 회갑을 맞는다.
「비·비 퀸텍스」로 유명한 부산방직은 일제치하인 1934년 직포공장으로 출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주인이 바뀌거나 사업무대를 다른 곳으로 옮긴 적이 없는 명실상부한 부산지역의 간판 토박이기업이다. 「비·비 퀸텍스」는 10∼20여년전만 해도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던 우리나라 제일의 양장지였고 아직도 많은 중년여성의 뇌리속엔 「최고급 옷감」으로 새겨져 있다.
60년 역사에 비해 부산방직은 결코 크게 성장한 기업은 아니다. 자본금 40억원에 종업원수는 4백20여명, 연간 매출액과 수출액도 각각 3백억원과 6백만달러수준이다. 외형만 보면 그저 흔한 중견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예사 기업이 아니다. 단 한번도 하청업체에게 납품대금지급을 늦춰본 적이 없고 임금체불경험도 없다. 이 회사의 발행어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산지역 재래시장이나 사채업자들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어음의 하나로 지목될 만큼 신용도나 재무상태가 우수하다.
50년대초 홍콩 마카오등지로부터의 밀수가 극성이던 오버코트복지를 자체 생산해 내고 최고급 캐시미어나 앙고라 코트지, 특수모 이중지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한 것은 국내 산업발달사에서 평가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부산방직제품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시장에서 가격이나 품질 모두 경쟁력의 절대우위를 지키고 있다. 부산방직이 자체기술로 생산해낸 첫 오버코트를 이승만대통령이 시착한 것은 아직도 모직업계의 유명한 일화로 전해오고 있다.
잦은 정치적 격변과 경제의 부심속에 수많은 기업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부산방직이 한 우물만을 파면서 착실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부산방직의 유서깊은 정서 때문이었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생산업체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허영만 더할 뿐 좋은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창업자인 이원갑회장(작고)과 2세경영자인 이동건사장의 대를 잇는 경영철학이다.
경공업의 전반적 퇴조속에 막대한 자본과 첨단시설을 갖춘 대기업이나 외국브랜드의 거센 공세로 부산방직의 명성은 물론 옛날같지만은 않다. 하지만 50여종의 고유브랜드와 원료조합에서부터 최종생산에 이르는 공정을 일관화한 첨단설비는 부산방직을 탄탄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받쳐주고 있다. 특히 「사양산업」이란 주위의 말에도 아랑곳않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무더기도산과 부산지역경제가 피폐화된 최근까지도 부산방직은 신제품개발(약 1천여종)을 계속하고 해외(중국 스리랑카)진출까지 시도하고 있다. 또 작년엔 60년 생산터전인 부산 가야동에서 신평동으로 공장을 이전, 2백억원을 투자해 시설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공업·중소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모든 경제기반이 서울로 집중되는 요즘, 부산방직의 대를 잇는 투철한 기업가정신은 두고두고 음미해볼 부분이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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