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통일위 「국내문제」 논쟁 진풍경/“북핵 체제유지용… 수가 문제 아니다”/여/“원문도 읽지않고 비난… 신용공음해”/야/이 부총리/“외압·사전협의없이 원론적 논평” 23일 국회외무통일위에서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주로 대외문제를 다루는 외무통일위에서 국내문제가 핵심이슈로 등장한것이다. 북한핵을 둘러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발언과 이홍구통일부총리의 논평이 의원들의 표적이 됐다. 야당의원은 김이사장 발언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왜곡된 사실에 기초한것이라며 「신용공음해」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 여당의원은 정부입장을 지원하면서 김이사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상오10시께 열린 회의는 이부총리의 인사말과 함께 최근의 남북관계 현안보고로 점잖게 시작됐다. 그러나 질의에 들어가면서는 예상대로 김이사장 발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처음 말문을 연 사람은 민자당의 박정수의원. 박의원은 『어차피 거론될 문제이니 효과적인 회의진행을 위해 김이사장의 발언 원문을 통일원으로부터 받아보자』고 제의했다. 박의원은 또 『김이사장의 발언이 알려진것과 다르다면 김이사장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한것이고 그렇지않다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혼선을 가져오는것』이라고 말해 이 문제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기부장 출신의 안무혁의원(민자)은 『북한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체제유지용』이라며 『핵은 수자가 문제되는것이 아니다』고 나섰다.
이날 정부측을 강도높게 비판한 민주당의 대표선수는 남궁진의원. 남궁의원은 『정부논평에 인용한 문구가 원문과 다르다』면서 『이는 외부압력에 따라 원문도 읽지 않고 비난논평을 냈다는 증거가 아닌가』라고 따졌다. 남궁의원은 김이사장의 연설원문과 정부의 외신기자용 논평을 비교해가며 1시간가량 반박에 나섰다. 우선 정부논평에서 인용된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대북특사제의는 용어부터 잘못됐다는 설명이었다. 특사(SPECIAL ENVOY)가 아니라 사절(EMISSARY)이며 카터를 지칭한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카터의 가능성을 묻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주장이었다. 또하나 적극 해명한 부분은 「북한이 2∼3개의 핵탄두를 가졌더라도 문제없다」는 내용. 정부논평은 「문제없다」(NO PROBLEM)로 인용했으나 실제로는 「미미하다」(PALE)고 표현했다는것이다. 남궁의원은 김이사장이 「만일(EVEN IF)」이라고 표현한 부분의 영문법적 특성까지 설명하며 정부측의 오역을 꼬집었다. 이 표현 뒤에 「양보절」이 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취임후 첫 국회에서 곤욕을 치른 이부총리는 『이 시대에 김이사장에 대해 조직적인 음해를 한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실제 있지도 않다』며 논평의 정치적 성격을 부인했다. 이부총리는 『번역이 잘못됐다는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압력이나 공보처와의 사전협의는 없었다』면서 『김이사장의 국제적 영향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공인이라는 입장에서 논평한것』이라고 순수한 취지였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앞서 외무통일위는 김이사장 발언문제에 대한 의사진행방법을 놓고 초반에 정회를 하는등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총리를 지낸 노재봉의원(민자)은 『오늘 모임은 시시각각 중대국면으로 치닫는 북한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것』이라며 『국내정치문제를 먼저 다루는것은 본말이 전도된것』이라고 의사진행발언을 했으나 반향을 얻지 못했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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