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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정청사 국내복원/뒤엔 「기인수집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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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정청사 국내복원/뒤엔 「기인수집가」있었다

입력
1994.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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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독립유물 송환앞장 오성환씨/중국관계와 교분… 끈질긴 설득으로 성사/송환 몰두로 가세기울어 무허건물 생활 상해 첫 임시정부청사를 해체해 21일 국내로 들여온 문화재수집가 오성환씨(68·충북 청주시 사직2동7)는 정부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낸 기인이다.

 26년 충북 청원군 미원면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국민학교를 중퇴한 오씨는 제재소 정미소등 닥치는대로 사업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76년 우연히 「청일전쟁해전사」란 책을 읽다가 당시 청나라의 고승호(2천톤급)가 침몰한 사실을 알고 78년 영국 해군성에 조회해 입수한 해도로 침몰위치가 충남 아산만인근임을 확인, 중국정부에 이를 알리면서 교분을 튼 것이 임정유물을 수집하게 된 계기였다.

 88년 9월에는 개인명의로 등소평과 조자양에게 유골송환을 제안, 중국측과 더욱 가까워졌다. 오씨는 이때부터 안중근의사의 친필휘호가 새겨진 「제일강산」현판, 중경임정이 만든 조선광복군성립대회기념비등을 들여왔다.

 오씨는 91년 친분있는 중국 관리로부터 1919년4월 상해임시정부 제1청사로 사용됐던 건물과 임정요인 숙소 건물이 헐린다는 정보를 입수, 이현희 성신여대교수(57·국사학) 이수봉 전 충북대교수(60)등과 「상해임시정부청사복원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상해시와 협상을 벌인 끝에 송환에 성공했다.

 오씨는 유물반입에만 몰두하느라 가세가 기울어 현재 13평짜리 무허가 건물에서 부인(63) 장남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오씨는 『처자식에게 못할 짓을 했지만 이젠 가족들도 내 뜻을 이해해주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수교도 안된 중국을 드나들다 78년엔 군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오씨는 유물을 살때마다 사채를 끌어 써 빚더미에 올라 있다. 그러나 지난해 안중근의사 친필휘호 현판을 13억원에 팔라는 한 사업가의 제의를 받았으나 단호히 뿌리쳤다. 임정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물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일념때문이었다.

 오씨는 『수집한 유물 모두를 국가에 기증하겠다』며 『아직도 상해등지에 남아있는 한국관련 유물을 송환하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씨는 『광복 50주년인 내년까지 임정청사를 비롯, 모든 유물을 모아 전시, 일제에 항거했던 선대들의 강인한 민족정신이 후세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청주=한덕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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