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회담」 걸림돌해소 판단/“아직 특별사찰 남아” 낙관경계 북한 영변 5㎿원자로의 핵연료 비전용사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에 의해 확인됨으로써 북핵문제는 또다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연료봉교체를 개시함으로써 급작스럽게 형성된 긴장기류가 우선은 걷히게 된 것이다. 이른바 핵안전의 연속성 여부에 대한 검증결과 5㎿원자로에 대해서는 핵연료가 전용됐다는 객관적 단서를 찾지 못함으로써 제재냐, 아니냐의 극한상황만은 일단 피하게 된 셈이다.
핵협상의 실질당사자인 미국정부는 사찰상황을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해가며 대북제재를 기정사실화하던 미국이 비전용사실이란 「낭보」 하나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북한이 연료봉교체를 임의개시함으로써 기술상·절차상의 위반은 했지만 이것만으로 북핵해법의 기본구도가 완전히 깨졌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협상의 여지를 두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화에 의한 핵문제 해결을 모색해온 미국으로서는 어쨌든 계속 협상을 위한 상황여건을 마련, 보수파의 목소리를 다독거려가며 소위 「인내외교」의 가능성을 계속 엿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동안 워싱턴 포스트지는 핵협상의 전도를 매우 불투명하게 전망했었다.
한스 블릭스 IAEA사무총장이 지난 18일 내놓은 「북한핵연료봉 제거상황」에 대한 1차성명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해석한 결과였다. 이에 당황한 미국정부는 부랴부랴 IAEA쪽에 새로운 성명발표를 주문, 긍적적인 분석을 유도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미국측으로서는 북핵문제해결과 관련, 가급적 대화와 협상의 공간을 확보해두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페리 미국방장관이나 갈루치 북한핵전담대사도 IAEA의 1차판단 결과를 『희망적 신호』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번 사찰이 북핵시설의 핵전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그 1차적 목표는 달성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3단계 고위급회담의 개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당장은 해소됐다는 시각에서 북미간의 당면 관심현안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3단계회담에 대한 전망이 밝아졌다고 해서 이를 핵타결의 낙관적 시각과 곧바로 연결짓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북핵문제는 「과거에 핵물질을 전용한 사실 여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5㎿원자로라는 새로운 현안이 부상됨으로써 핵의혹의 초점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의 지렛대를 자유자재로 활용케 하는 효과를 얻게 한 것이 사실이다.
페리국방장관은 긍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북한이 반드시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한 완전사찰과 평가를 받음으로써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북한의 과거행적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북핵협상의 핵심이 될 것이란 얘기다.
갈루치대사도 20일(현지시간) 3단계회담이 언제 열릴 것이냐 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신중론을 폈다.
IAEA의 종합평가가 나온 연후에 비로소 3단계회담 개최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주초 뉴욕실무접촉을 재개해 본격적으로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태도이고 보면 미국으로서도 3단계회담의 성사를 비교적 낙관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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