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화 자존심이 세계적 예술 모태”/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화 자존심이 세계적 예술 모태”/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

입력
1994.05.18 00:00
0 0

◎후안 미로­영원한 카탈로니아인/고향에대한 깊은애정 작품에 흠뻑 한국일보사가 창간 4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특별후원하는 「후안 미로 종합전」 1부가 17일 강남의 쥴리아나 갤러리(514―4266)에서 개막되었다. 1부(6월5일까지)에 이어 2부가 강북의 백상기념관(6월7일∼26일, 733―6673)에서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 맞춰, 미로(1893∼1983년)의 예술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는 림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글을 싣는다.【편집자주】

 스페인 카탈로니아주의 수도인 바르셀로나시에는 후안 미로가 세워놓은 독특한 형태의 환경조각이 마치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처럼 우뚝 서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번화가의 보도위에 그의 모자이크 작품이 제작돼 있어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늘 그 작품을 밟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방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미로 자신의 말처럼 그는 언제나 자신이 태어난 카탈로니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적이 없었다. 이처럼 미로는 카탈로니아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예술가이며 또한 진정으로 카탈로니아의 정서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정열과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문화적 자존심, 삶에 대한 긍정의 정신이 넘쳐나는 카탈로니아인들의 기질과 성품을 만들어낸 그곳의 풍토를 미로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 알려진 바대로 미로가 처음부터 초현실주의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작품은 오히려 입체파의 흔적을 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1924년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등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미로는 초현실주의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당시로서 가장 전위적인 예술운동이었던 초현실주의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탈로니아 그림이 프랑스의 새로운 회화보다 더 낫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작품 속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로의 초기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농장풍경은 모두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카탈로니아의 농촌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상상력의 세계, 그 동화 속의 이야기와도 같은 미로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개척한 자동기술법(AUTOMATISM)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브르통은 미로의 이러한 작업경향에 대해 「순수한 정신적 자동주의」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해볼 때 미로의 세계는 매우 독특하고 생기넘치며 무엇보다 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영구보존할 미술관의 위치까지 바르셀로나의 몽후이크로 스스로 선택한 것을 보면 미로는 죽어서까지 카탈로니아인으로 남기를 원했던 것이 분명하다.

 범세계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을 잊지 않고 영원히 카탈로니아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삶을 돌이켜 보며 우리는 문화적 정체성이 과연 어떤 것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