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소르망교수 저서서 주장/“「중산층 요구」 분석보다 설득력/독특한 문화·전통바탕한 성과”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사회학자인 기 소르망(GUY SORMAN)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본론의 발전과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한국민주주의의 출현은 독재군부가 성숙되어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소르망교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만이 명백하게 진보와 평화를 의미한다고 결론짓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들었나」라는 장에서 10쪽에 걸쳐 한국의 경우를 예를 들어 분석했다.
스탠퍼드대와 파리정치연구소 교수를 역임한 소르망교수는 「신부국론」(89년),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92년)이라는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소개돼 있는등 세계적인 학자다.
그의 저서에서 한국관련부분을 요약한다.
93년부터 서울거리에서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졌다. 이는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대체한 결과이다. 학생들은 과거에는 공동체의 운명을 기준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을 했으나 이제는 개인적인 존재의식을 통해 대화의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대결의식을 지양하고 한국적 전통에서는 그렇게도 비난받던 타협과 협상의 새로운 전통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은 자본주의적인가 아니면 계획경제의 부류에 속하는가. 전자는 재벌의 역할을, 후자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답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경우든 한국인은 근면성과 일본에 대한 자존심을 바탕으로 남북대치상황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말처럼 한국인은 개인적으로는 자유분방한 면이 있지만 목표가 설정되면 지휘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구소련지도자들은 많은 연구를 했으나 결국 이는 독특한 문화와 역사, 한을 가진 한국인에게만 발견되는 것이라는 씁쓸한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을 「독재정권의 성립, 자본주의 발전, 중산층 형성, 민주주의 도래」라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독재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조건이 된다고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배경설명이 없이는 이러한 주장을 펼 수 없다. 왜냐하면 독재를 했다고 해서 다 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제3세계국가들이 독재체제하에서 신음했으나 아직까지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출현한 것은 군부가 더 이상 복잡해진 산업사회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완전히 성숙해서 독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성숙과정에 있는 복잡한 자본주의체제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재가 사라진 것이다. 독재군부체제의 경영능력부족이 오히려 중산층의 요구라는 이유보다 더 잘 민주주의의 정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김영삼정부는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입장에 서있지 않다.
새 정부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과감히 중단하고 세계화의 추세에 따르기 위해 시장개방을 단행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은 마르크스를 비웃기나 하듯 한 세대만에 전통적인 역사에서 근대시민사회로의 이행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독일의 경우처럼 분계선이 무너진다면 북한주민들이 남쪽으로 넘어오지 그 반대의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파리=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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