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불 등 외국인소개 본격화【사나 로이터=연합】 남북예멘간의 내전이 사흘째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예멘측은 7일 자신들의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예멘측 지도자들의 전면 투항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예멘 출신인 알리 압둘라 살레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협상을 통한 분쟁의 해결과 외국의 중재를 일체 배격하고 남예멘 지도자들의 즉각 투항을 요구하는 강경자세를 보인 것으로 사나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같은 북예멘 출신인 모하메드 바산다와 외무장관도 이날 카타르 국영 라디오 방송과의 회견에서 『현재의 군사적 상황은 남예멘측에 유리하게 발전되지 않고 있다』면서 『즉각 투항한다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산다와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알리 살렘 알 바이드부통령을 추종하는 남군측이 지난 3일간 모두 13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수도에 발사했으며 12대의 남군측 전투기가 격추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예멘은 이날 남예멘이 제의한 휴전을 즉각 거부했다.
남북 예멘 양측군대의 전투가 격화,치안이 혼란해짐에 따라 미국 프랑스 독일 인도 러시아등은 자국 외교관 및 상사원,교민들의 소개작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북예멘군은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봉쇄한 채 4개 방면에서 공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아덴 시민은 남북예멘군이 아덴시에서 불과 수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전했다.
◎예멘내전 왜 일어났나/북자본주의·남사회주의 체제달라 갈등/군지휘체계 제각각·경제적빈곤도 한몫
예멘의 남북군이 7일에도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 내전이 확산돼 가고있다. 이로써 90년 5월 대화와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이뤄 같은 분단국가인 우리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예멘은 사실상 재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전의 발단은 지난달 27일밤 남북예멘군이 충돌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비롯됐다. 전투가 일어난 곳은 수도인 사나 북쪽의 암란공동군사기지·지도부가 따로 따로인 상황에서 양쪽이 기지를 같이 사용한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전문가들은 재분열이 양쪽의 불신과 대립을 무시한 형식적 통일에 따라 야기된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남북예멘은 72년간의 분단상태를 극복하고 북지도자 압둘라 살레를 대통령, 남의 살렘 알베이드를 부통령으로 통일국가를 이뤘지만 통일후 줄곧 자본주의적·부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북예멘과 사회주의 국가이데올로기가 침투한 남쪽의 노선이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무력충돌로 발전한 직접적 원인은 군통합의 실패다. 한나라가 됐다지만 군은 지휘계통·장병의 구성등에서 남북으로 완전히 분리, 불완전한 통합을 이루면서 지도부의 분열상을 노출시켰다.
북군은 38만, 남군은 27만의 정규병력을 보유한채 각각 자기지도자에게만 충성하는 사병위치로 전락, 사사건건 충돌을 거듭해왔다.
특히 살레대통령의 의형제가 이끄는 북군은 자주 남군에 대해 월권에 가까운 언행으로 남군의 불만을 자극해왔는데 이번 충돌의 도화선이 된 남예멘출신장교의 반란도 의사결정에서 배제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살레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불만을 품어온 북예멘의 여러 부족들이 도로를 봉쇄, 북군의 진로를 방해하는등 남군측에 가세하는 양상마저 나타났다.
이와 함께 남예멘주민들은 남쪽에서 발견된 유전개발의 과실이 대부분 북예멘 기득권층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예멘은 걸프전때 이라크를 지지, 사우디가 85만명의 예멘노동자를 추방하고 원조도 끊는바람에 25%에 이르는 실업률, 연1백%를 넘는 인플레에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백45달러(90년 추정치) 밖에 안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등 각국대사관이 7일현재 자국민철수를 서두르고 있으며 전국주요공항이 폐쇄돼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된 가운데 예멘은 갈수록 혼미를 더해가고 있다. 아랍연맹은 예멘 내전종식을 위해 아랍군을 파견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각국의 이해가 대립해 당장 현실화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내전에서 사우디는 북예멘을, 이란은 남예멘을 은밀히 배후에서 지원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외교소식통들은 내전확산으로 지난 4년간 평화적인 「통일실험」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이상 한쪽이 군사력에 의한 무력통일을 하든지 재분열의 길로 나가는 것 외에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조상욱기자】
◎예멘 어떤 나라인가/식민지배·분단얼룩진 중동빈국/남북반목 “깊은골” 재분열위기
아라비아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예멘의 인구는 1천2백60만명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 나라다.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지배, 72년간의 분단, 약 20년동안의 통일준비여정, 그리고 4년간의 통일실험이 예멘의 근현대사이다. 15세기이후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예멘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영국이 18년 북예멘만을 독립시키고 남예멘지역을 아라비아연방에 편입시킴으로써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북예멘은 독립후 왕정을 거쳐 62년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공화정을 채택했으나 정정불안등으로 쿠데타가 잦았다. 사회도 여전히 부족중심적이며 전통 이슬람적인 색채가 강했다. 반면 남예멘은 67년 독립, 중동 유일의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해 왔다.
민족 언어 종교가 동일한 남북예멘은 남예멘이 독립한 직후부터 통일을 논의했으나 북측의 보수적 민족주의와 남측의 사회주의 체제간 이념대립으로 79년엔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빈곤 청산등 공통의 과제를 안고있는 양측은 81년 통합원칙을 확인하는 아덴 협정을 체결한데이어 88년엔 국경지대의 유전을 공동개발키로 합의하고 상호간 여행을 자유화하는등 통합조치를 가속화했다.
양측은 90년 5월 헌법초안을 마련하고 통합한뒤 30개월간의 과도기간을 두고 통합작업을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다. 양측은 이 기간에 통합헌법에 따라 각료직을 배분하고 화폐통합을 이루었으나 군부와 정보분야에서 만큼은 양측간 이해대립이 심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또 형식상 1대1의 통합이었지만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큰 북예멘쪽이 통합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93년4월 총선후 북예멘의 살레대통령이 통일예멘의 대통령에, 남예멘 사회당의 알 베이드가 부통령에 취임, 통일정부가 구성됐다.【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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