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중매인들의 파업 이틀째인 4일 상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은 농민들의 분노와 소비자들의 한숨으로 가득찼다. 공들여 재배한 농산물을 트럭에 가득 싣고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꼭두새벽에 도매시장을 찾아왔던 농민들은 텅 빈 경매장에서 마냥 경매 재개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억눌렀던 울분을 터뜨렸다. 『우루과이 라운든가,뭔가로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또 웬 날벼락이냐』 『농민들을 살리겠다던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냐』
시장바닥에 내팽개쳐진 농심들이 토해내는 분노의 소리는 햇빛이 뜨거워 지고 과일 야채들이 시들어 갈 수록 높아져 갔다. 그러나 그 흔한 「당국」에서누군가 나서 대책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상추경매를 시작하려 하자 중매인들이 일제히 『뭣들 하는거냐』고 막고 나서 경매를 무산시켜도 속수무책이었다.
3일 아침 충남 천안에서 부락대표로 호박 2트럭을 싣고 와 밤을 꼬박 새우며 기다렸다는 한 청년은 『판로를 걱정하느라 일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을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며 조바심을 하다가 마침내 『먹을것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아』하고 고함을 지르고는 고향으로 차를 돌렸다. 경매장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채소들은 푸른 잎이 누렇게 바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새벽부터 물건을 사러 나왔던 상인들과 주부들도 판을 거둔 시장을 둘러보다 혀를 차며 발길을 돌렸다. 한 주부는 『농산물값이 춤을 추더니 돈 주고 살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어처구니 없어 했다.
자신들을 살찌운 농민의 생존권과 소비자의 먹거리를 볼모로 한 중매인들의 파업은 억울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집단이기주의」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파문을 번연히 예상하고서도 농민과 소비자들을 충격과 불안에 몰아 넣은 책임이 정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틀간의 대치가 정부의 「도매금지 6개월 유예」발표로 거짓말처럼 풀린 4일 저녁 농민들과 소비자들에게서는 안도의 말보다 『이것도 「깜짝쑈」인지, 한심스럽다』는 개탄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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