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그럴 수가 있을까. 북한의 실상과 고난은 상상과 추측을 훨씬 넘어선다. 심각한 식량난과 궁핍상은 이미 알려진 바이나 기아의 참상이 그런 지경에 이른 줄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중국을 경유하여 귀순한 여만철씨 일가의 탈북증언은 그들 가족이나 듣는 사람 모두를 눈물과 탄식에 잠기게 하며 전율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유일·주체사상이 지배하는 북한의 시계는 「칠야의 시간」에 머문채 묶여 있음이 분명하다. 드러난 북한의 실상과 허상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정립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시간이 지금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귀순회견에서 무엇보다 우리네 통증을 자극하는 것은 극심한 식량난이다. 탈출가족은 지난 92년부터 고통을 벌써 느끼기 시작했고, 작년 여름에 이르러 식량배급이 끊겼다는 것이다. 허기를 메우자면 농촌을 찾아가서 물물교환을 통해 양식을 얻는 방법뿐이라고 한다. 그나마 마른 옥수수를 물에 불려 끓여 먹거나 풀처럼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전해주는 몇가지 실화는 그대로 애화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배불리 먹여야 하는데…』 하는 대목에선 울먹이기까지 했다. 사흘을 굶으며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진 처녀의 이야기, 잠자리에 들기전 배고픔을 호소한 자녀들의 비화는 도무지 현실같지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식량난으로 부모를 모시기도 어렵고, 부모 또한 자식에 기탁할 형편도 못된다. 기막힌 기아상태는 인륜과 천륜을 끊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게 하고 있다. 일찍이 우리가 1950년대 초에 겪은 보릿고개나 일제말의 초근목피 악몽을 능가하는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북한주민의 이러한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일성부자의 호사와 환락을 위해 어려서부터 「기쁨조」를 뽑아 몸매를 관리하고 있다는 폭로다. 반인도의 공분이 절로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체제 이런 사회가 어디에 또 달리 있을까. 탈출가족들의 표현대로 소설같은 이야기가 지금 북한의 현실임을 실감케 한다. 그들은 이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민족의 마음을 향해 강조하고 있다.
혹독한 「북한25시」의 실상을 알려주는 통렬한 증언을 단순히 개탄으로 끝내고 한귀로 흘려 버릴 일이 아니다. 이것은 같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대사안이다. 혹시라도 설마하는 의심이 생긴다면 「필사의 탈출」에 대한 모독이다. 확실하게 검증된 생활체험은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충분하다. 공연한 사시적 시각은 배제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북·통일정책도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할것이다. 북의 지배층만 아니라 북한주민을 포용하는 시야의 확대가 필요하다. 대탈출이라는 한반도의 엑서더스가 결코 상상에 그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요구된다. 김일성배지까지 경원하는 북한의 오늘이 심상치가 않다. 탈북자의 증언을 눈물에 묻어둘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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