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행장 3명이나 옷벗어/외형 확대 엄두 못내고 「손실」 방지 급급/“예방 비상” 채찍·당근 함께 사용 은행들이 「금융사고 노이로제」에 걸렸다. 툭하면 터지는 대형금융사고로 올들어 벌써 은행장 3명이 옷을 벗었고 10여명의 임원들이 잇따라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거센 사정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던 은행가는 이번엔 금융사고물결에 휘말려 또 한번 쑥대밭이 된 셈이다.
치열한 경쟁속에 한동안 「성장드라이브」에만 매달려왔던 은행들은 이제 사고방지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입장이다. 『은행원 모두의 분별력과 양심외엔 백약이 무효』라고 체념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은행들로선 사고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묘책」을 짜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임원수난시대」라는 말이 나올만큼 올해 유난히도 굵직한 금융사고가 많았던 은행들은 이제 직원들에 대해 사고예방차원의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쓰고 있다. 우선 문책수위부터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악의적 대형사고가 아니면 감봉 견책이 고작이었지만 이젠 고의성없는 사고도 일정선 이상이면 관련자들은 옷을 벗어야 한다. 금전손실은 작아도 공신력을 실추시키면 「가중처벌」이 불가피하다. 지점장평가도 외형확대의 가산점보다 사고발생시 감점비중이 높아져 사고점포장중에선 임원배출이 어렵게 됐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길도 많아졌다. 정기감사는 물론 불시암행감찰도 잦아졌고 외부사람을 통해 근무태도나 서비스실태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목때문에 동료의 비위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고발용전화와 사서함까지 개설한 은행도 있다. 한 시중은행은 최근 창구직원을 선발하는데 ▲안정된 생활환경 ▲기혼자 ▲신입사원배제등 원칙을 정한뒤 발령대상직원들을 대상으로 「선의」의 사생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채찍」만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 사고를 겪은 한 시중은행 감사는 지점장들에게 『사고 안내려면 아랫사람부터 잘 모셔라』고 주문했다. 기왕의 금융비리는 은행고위층의 「정치성여신」이 많았지만 이젠 일선점포의 「현장형사고」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금융계는 『경쟁가열로 은행들은 고객유치와 외형확대를 위해 직원들에게 일정부분 희생을 요구해왔다』면서 『은행원의 사기와 자존심은 곤두박질쳤고 결국 크고 작은 금융사고를 유발시키는 간접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은 사고방지의 열쇠가 은행원의 사기회복과 자질향상에 있다고 보고 점포장들에게 『실적증대보다 직원부터 어루만져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은행장―직원간 핫라인을 개설하고(하나은행) 직원생일에 은행장이 직접 카드를 보내는가(신한은행) 하면 극기훈련장에서 행장이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것(서울신탁은행)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상업은행은 「○억원예금돌파」 「○○적금가입자확보」등 외형확대를 독려하는 직원용포스터를 아예 없애고 「사고는 우리의 공적」 「금융사고 내가 먼저 막아내자」 「무심코 숨긴 비리 사고되어 내게 온다」등 사고예방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문구의 포스터를 분기별로 제작, 배포하고 있다.
이같은 「채찍과 당근」의 배합이 사고방지에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30년이상 반평생을 은행에 몸바쳐온 임원들이 한 순간에 옷을 벗게되는 요즘 금융계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각 은행의 사고예방대책도 당분간은 「당근」보다 「채찍」에 무게중심이 실릴 전망이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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