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등 주요 선진국이 최근 정보의 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계획이니 신사회 자본정책이니 하는 대용량의 정보통신망 추진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에 뒤질세라 우리 정부도 지난달말 이와 유사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건설계획을 공개했다. 계획의 핵심은 2010년까지 44조원을 투자해 종래에 여러가지 다양한 전송로를 통해 제공되던 통신 정보 방송서비스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초대용량, 초고속의 공용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부처 장관 및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건설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킬 방침이다.
초고속망의 건설이 국민생활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막대하게 기여하리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대용량 망으로 구축하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다. 차량도로와는 달리 정보의 고속도로에서는 정보량이 넘친다고 해서 미봉책으로 쌍방향 통행정보의 어느 한쪽을 제한하는 가변차선제나 날짜별로 통행을 막는 10부제를 실시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계획에는 망을 통해 흐르게 될 소프트웨어, 특히 방송프로그램 영화 비디오등과 같은 문화적 소프트웨어개발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책임자가 『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임무이지 그 위를 주행하는 차량들에 대해서는 알 바없다』는 식의 입장을 취한다면 그 도로는 어떻게 될까.
통신망의 구축에 상응하여 고도의 정보 문화 소프트웨어 발전이 따라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보다 높은 것같아 걱정이 된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국의 정보 문화 소프트산업 발전수준이 최첨단의 전송로를 확보한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차량의 통행이 저조하거나 경운기가 주로 다니는 고속도로는 그 건설의 의미를 잃고 곧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의 발전없는 전송망의 확장은 개방화의 압력속에서 해외의 정보, 문화수입에 대한 수요와 의존도를 심화시켜 정보문화산업의 대외종속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힘들여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았더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외제차들만이 신나게 질주하는 꼴이 그것이다.
또 정부의 계획은 지나치게 수단지향적이고 기술지향적인 것같다. 초고속정보망의 건설은 정보화사회와 정보문화복지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정책추진체의 명칭(초고속정보통신망 건설추진위원회)에서 확연히 나타나듯 마치 망의 건설 그 자체가 목표이자 과제의 전부인 것처럼 부각되어 있다. 이 망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단 범국민적 합의가 도출된 상태라고 전제해도 망의 물리적 구축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와 대비책은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난 인상이다.
정보통신문화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통신하드웨어분야와 정보 및 문화소프트웨어 분야가 균형있게 육성돼야 한다. 고속도로를 잘 뚫어 놓았다고 자동차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원·신문방송학 박사>한국방송개발원 연구원·신문방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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