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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통역사로 활약/구엔 당 야오씨(화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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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통역사로 활약/구엔 당 야오씨(화제의 인물)

입력
199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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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전사서 경제일꾼 “변신”/북한유학 한글공부… 월남전땐 월맹군첩보원도 월남전 당시 월맹군 비밀첩보요원으로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암약했던 베트남인 구엔 당 야오씨(52). 당시 한국군을 「미국의 앞잡이」로 그 누구 보다 증오했던 사회주의 혁명전사였다. 그가 이제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최전선에서 돕는 특급통역사로 활약하고 있다.

 야오씨의 극적인 변신에는 「뜻밖의 이력」이 숨어 있다. 60년대 중반 북한의 외국인 국비장학생으로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했던 것. 때문에 투박한 평양식 발음이지만 그의 우리말 구사는 유창하다.

 『남들이 저를 두고 「3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20대 초반에 배웠던 조선말이 뒤늦게 효험을 발휘할줄 정말 몰랐지요』

 지난 91년 한국기업의 베트남투자가 본격화된 이후 그는 수백 차례의 통역업무를 치러 왔다. 특히 미국의 무역금수조치가 해제된 후 지난 2월부터는 밀려드는 한국기업인들로 휴일도 없을 정도다.

 이 때문인지 그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평균 베트남인 월소득이 40달러 수준인데 비해 그의 통역 일당은 50달러인 까닭이다.

 『그러나 저는 결코 돈에 눈이 먼 베트남인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나의 열정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야오씨는 강조한다.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에는 「질곡의 베트남현대사」가 흠씬 배어 있다. 남부 메콩출신인 그는 독립투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7세때부터 호치민사상을 마을뒤 숲에서 몰래 학습했다.

 이후 54년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던 프랑스가 패퇴한 이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월맹으로 월북했다.

 공산주의만이 양단된 베트남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신념 때문이었다.

 이후 하노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63년부터 5년간 김일성대학에서 수학했다.

 『월맹과 북한간의 협력관계강화 차원에서 당시 저를 포함, 약 6백명의 베트남청년들이 북한의 대학에서 유학했습니다. 북한의 현실력자 김정일도 저의 대학2년 선배입니다』 야오씨는 북한에서 귀국한 후 곧 바로 반미구국투쟁에 나섰다. 70년대 초반에는 비밀첩보통로인 호치민루트를 넘나들며 월맹군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조국해방전쟁(월남전) 당시 고향 메콩지역에서 한국군은 지독했습니다. 왜 한국사람들이 남의 전쟁에서 그렇게 열심히 싸우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경멸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입니다』  

 베트남통일 후 메콩델타 라디오방송국에서 부국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통일 19년째를 맞는 현재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피폐한 베트남경제를 돕기 위해 찾아 오는 한국인에 대해 고마움마저 피력한다.

 『한국등 서방진영이 경제지원을 계속한다면 멀지않아 베트남경제는 동남아의 새로운 농이 될 것입니다. 무기로 투쟁했던 정치혁명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장년의 몸이지만 베트남 경제혁명의 기수로 임해 보렵니다』

 야오씨는 자신을 아직 사회주의 혁명가라고 말한다. 혁명의 대의 때문에 20년 동지였던 부인 전 타 투홍씨(46)와 뒤늦게 결혼해 낳은 외동딸 원마이양(9)이 경제학자가 돼 베트남의 경제 일꾼이 되길 바라는게 그의 소박한 꿈이다.【호치민=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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