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애도의 시간을 맞고 있다.지난 22일타계한 미정계의 거성 리처드 닉슨전미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로 가득하다. 어딜가나 조기가 나부낀다.신문과 방송도 추모특집 일색이다. 닉슨의 장례식이 열리는 27일은 애도의 날로 공휴일이다.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고 우편배달도 중단된다. 장지인 캘리포니아주 요바 린다에는 추모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다.
여든 한살로 마감한 그의 삶이 미국역사에 남긴 족적이 그만큼 크고 깊기 때문이다. 닉슨은 생전에 말했다. 『삶의 풍요함이란 그 길이에 의해 측정되는 게 아니고 너비와 높이와 깊이에 따라 결정된다』. 그의 말마따나 닉슨은 종횡무진 영욕이 교차하는 인생역정을 걸어온 사람이다. 반세기의 공직생활을 통해 그가 보여준 인생관은 바로 불사조의 정신 그것이었다.
아마도 역대 미정치인 가운데 닉슨과 같은 미스터리의 인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냉전의 바람이 휘몰아칠때 그는 「매카시선풍」에 부채질을 해댔다. 해리 트루먼이나 딘 애치슨같은 사람들을 「매국노」니 「빨갱이」니 하며 몰아붙였다. 그러던 그가 72년 중국과 소련을 차례로 찾아나서 친구가 된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또 법과 질서를 외치며 백악관에 입성한 그가 「국가안보」를 핑계로 정적들의 구수회의 장면을 도청하는 위법행위를 저질러 치욕의 화를 자초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시원히 풀리지 않은 채이다. 그의 친구였던 빌리 그레이엄목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지휘한 인물은 아마도 「진짜 닉슨」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그의 불가해성을 설명한다. 닉슨은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후보인 조지 부시를 밀더니 그뒤에는 국민개보험이나 범죄퇴치대책등을 추진하는 빌 클린턴의 진보정책에 박수를 보내다가도 외교정책에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사건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가들이 그에게 총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한번 더럽혀진 정직성이 역사의 물결로 씻겨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역사의 진운을 날카롭게 꿰뚫는 비범한 비전을 무기로 미국 외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사라졌다. 후대의 역사책이 여전히 그를 「워터게이트 맨」으로 기록하게 될지, 아니면 흠은 있으나『위대한 미국인』으로 기록하게 될지는 더 두고 볼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