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총리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대통령과 총리와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 설정되어야 하는가. 김영삼대통령이 이회창총리를 월권행위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해임시킨 사건이래 새삼 제기되고 있는 의문들이다. 헌법에 나타난 국무총리의 역할은 대체로 3가지로 볼수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는 규정이 총리의 위상을 말해주는 포괄적인 조항이다. 그리고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을 가지며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국무회의의 부의장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무회의는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선전 강화 기타 중요한 대외정책을 심의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헌법에 명시된 권한만 보더라도 총리는 결코 바지저고리가 아님을 알수 있다.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말 그대로 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고도 남는다. 내각을 통할해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부의장으로서 각의를 주재하며 장관에 대해 제청·해임건의까지 할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규정대로 권한을 모두 행사하려고 할 경우 대통령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진다. 그 갈등은 곧 정치불안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곧 우리 제도가 안고 있는 결점이다.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면 그만인데 거기에다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를 도입한것 자체가 화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무력화시키는 반면 청와대참모진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국정운영방식을 통해 충돌의 여지를 사전 예방했다. 역대 국무총리들 역시 그런 방식에 순응해 왔기때문에 정부내의 1인자와 2인자간의 갈등이 표출된 일은 별로 없었다. 이번 이회창총리의 사퇴는 우리정부의 권력구조가 안고 있는 제도적 불안요인이 처음으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 문민정권시대에서 드러난 것이다.
지금 당장 헌법을 뜯어 고칠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해야한다. 그런 충돌가능성이 언제나 있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할것이다. 이번 사건은 그런면에서 새로운 것을 가르쳐준 셈이다. 총리의 위상과 기능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총리경질을 계기로 청와대가 더 강력해지고 총리와 내각이 약화될것이라는 항간의 관측이 사실로 나타나서는 안될것이다. 헌법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총리와 내각의 힘을 너무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식의 국정운영이 되풀이 된다면 대통령의 독주니 신권위주의니 하는 말들이 안나올 수 없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