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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분야 큰 발자취/「워터게이트」로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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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분야 큰 발자취/「워터게이트」로 얼룩

입력
199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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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닉슨 전미대통령의 81년 생애/핑퐁외교·데탕트바람 주도/은퇴후 국익위해 왕성활동 22일(현지시간) 타계한 리처드 닉슨전미국대통령은 한 미국인의 성공담이자 비극이란 두 얼굴로 비쳐진다. 고닉슨대통령은 지난 18일 뉴저지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코넬병원에 입원, 반신불수와언어장애를 겪어오다 영욕의 한평생을 마감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과 함께 동서냉전의 냉기류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70년대 국제사회에 데탕트 바람을 불어 넣은 세기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워터게이트 도청스캔들 때문에 지난 74년 8월 미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받아 재임중 물러난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같이 상반된 그의 족적이 말해주듯 그에 대한 평가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미언론들은 닉슨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그는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오점을 남겼지만 퇴임후 원로정치인으로서 미외교정책을 측면지원하는등 국가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4월 방한, 김영삼대통령과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을 만난데 이어 올 3월엔 모스크바를 방문해 루츠코이와 지리노프스키등 옐친대통령의 정적들과 조우, 러시아정가에 파문을 일으키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했다.

 닉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대체로 『그가 비록 도청사건으로 권좌를 물려나야하는 오점을 남겼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탁월한 통치철학과 지성, 추진력등을 겸비한 직업정치가였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특히 베트남전에서 손을 떼고 「핑퐁 외교」로 불리는 미중 관계 개선과 중동평화의 발판을 마련한 점은 그가 이룩한 뛰어난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72년 브레즈네프 구소련 서기장과 외교담판을 벌여 미소간 군축협상의 기본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의 사임으로 미국은 얻은것보다 잃은것이 더 많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대통령직 사임이 개인적인 불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국가발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것이다.

 뉴올리언스대 역사학과 스티븐 앰브로즈교수에 의하면 그의 사임으로인해 미공화당이 욕심많은 「극우파집단」으로 전락하며 정치불신의 골을 깊게했다는것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그를 「지킬박사와 하이드」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의 단점중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성격적 결함」으로 알려지고 있다. 닉슨은 우선 지나치게 승부욕이 강해 걸핏하면 복수심과 앙심등 사적인 감정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그는 또한 참모진이나 비서등 타인을 신뢰하지 않아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챙기는 버릇이 있었다. 이와 관련,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은 최근 회고록에서 중국과의 수교 발상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닌 닉슨의 구상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같은 그의 결벽적 성격은 한편으로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캘리포니아주 요브라 린다에서 주유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되는게 꿈이었던 닉슨. 그는 이제 젊은 시절 품었던 포부보다 훨씬 원대한 이상을 실현시킨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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