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자·전총리 10분통화 “섭섭” “축하”/식당서 샴페인 터뜨리려하자 “소리내지말라” 만류/통일원 “창설이래 첫 재상배출” 흥분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뀐 정부종합청사 총리실 주변은 전날의 충격을 채 삭이지 못한채 23일에도 술렁였다. 이회창전임총리는 청사에 나와 이임인사를 했고 이영덕총리내정자는 취임준비에 들어갔다.
○…이전총리는 이날 총리실 직원들을 모아 별도의 이임식을 가졌다. 퇴임하는 총리는 신임총리와의 이취임식 때를 계기로 총리실 직원들을 만나보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전총리는 이날 별도의 이임식을 가졌다.
이전총리는 전날 아무런 말도 없이 집무실을 나선 것이 마음에 걸린듯 이날 아침 8시20분께 이흥주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월요일(25일)에 신임총리와의 이취임식이 있겠지만 그날은 식구끼리 얘기할 상황이 못될 것같다』며 이임식을 갖고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전총리는 상오 9시20분께 청사로 나와 집무실에서 대기하던 이비서실장과 김시형행조실장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눈뒤 곧바로 1백여명의 총리실 직원들이 기다리는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이전총리는 『오늘 우리끼리 인사를 나누고 싶어 비서실장의 허락을 얻었다』고 말문을 연뒤 『편안함을 주지못하고 다그치고 힘든 일만 시켰는데도 아무런 불평없이 따라준 여러분들께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이전총리는 인사를 마친뒤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회의실을 떠났는데 일부간부들은 눈물까지 내비치며 아쉬워했다.
이전총리는 곧바로 기자실을 찾아 전날 못한 「이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전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이 청와대로부터 해임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표를 낸것임을 강조했다.또 이전총리는 기자들이 『다시 공직에 나올 것인가』 『대법원장을 제의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등의 질문을 하자『다시는 공직에 나오지않을 것』이라고 두번씩이나 강하게 부인해 물러나는 심정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뒤 곧바로 간담회를 마쳤다.
이전총리는 이임인사를 마친뒤 삼청동공관으로 가 짐을 꾸려 24일 종로구 구기동의 자택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이총리내정자는 상오7시30분 시내 H호텔에서 영락교회 모목사부부와 조찬을 같이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찬회의등으로 3주나 연기된 끝에 이루어진 숙제와 같은 약속이었다.
상오8시50분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종합청사 4층 통일원장관실로 출근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전총리와 통화키 위해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전화를 건 것. 그러나 이전총리는 이임인사를 위해 이미 총리실를 향해 떠난후였다.
상오9시50분께 이전총리가 통일부총리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섭섭합니다』(총리내정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월요일 이취임식에서 만납시다』(전총리)
통화는 10여분간 계속됐고 담담한 인사말만을 주고받았다.
통일원직원들은 69년 원창설이래 처음으로 국무총리가 배출됐다며 몹시 들뜬 분위기. 정작 이총리내정자 본인은 차분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들뜬 직원들을 가라앉히는 모습이었다. 수시로 총리실직원이 찾아왔으나 그는 총리임명동의안이 인준되지 않았다며 접촉이 몹시 부담스러운듯 조심스러워 했다. 특히 총리실측에서는 경호업무만큼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를 거절,경호요원중 몇명만이 눈에 뛰지 않는 「외곽경호」를 했다.
상오중 통일원장관으로서 마지막결재를 마치며 곳곳에서 축하전화를 받은 그는 가까운 친지들에게는『얼떨결에 걸려들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낮12시 출입기자들과 단골인 P냉면집에서 2시간가까이 점심을 함께 했다.
한 손님이 샴페인을 보내와 통일원간부가 터뜨리려하자 『소리를 내지 말라』고 이를 만류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냉면이나 먹자』고 피하던 그는 71년 한국교육개발원장으로 취임한뒤 자신의 공직경력을 회고, 『박정희대통령이 불행한 군인이라면 나는「불행한 교육자」』라고 말했다. 야당이 임명동의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기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 일것』이라고 즉답한뒤 『나를 보수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잘라 말했다.【홍윤오·고태성기자】
◎“다시는 공직 맡을생각 없다”/이회창 전총리 일문일답/자의로 사표… 개혁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당분간은 여러분들을 만날 기회도 없을것같고 그냥 떠나버리면 경우가 아닌것 같아 인사차 들렀다』 전격적인 「경질」을 당한 이회창전국무총리는 23일 상오 종합청사 10층 기자실에 들러 출입기자들에게 전날 하지못한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은 간담회의 일문일답.
―재임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또 아쉬웠던 점은.
『보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어렵다고 본다. 물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돌발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같은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비됨으로써 정부정책을 차분하고 본격적으로 시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어제 청와대에 올라갈 때 사임서를 갖고 갔는가.
『구두로 표명할 수도 있는것이다. 다만 분명하게 하기위해 절차를 따른것이다. 자의로 사의를 표명했고 그 사의가 수리된것이다. 그렇게 알아달라』
―이전에도 사의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는데.
『지난번 UR협상관계로 농림수산부장관에대한 해임조치가 논의됐을 때 총리로서 보고절차를 챙기지못한 책임을 느껴 사의를 표명했다. 그때는 대통령이 만류했었다』
―정부에 건의할 내용은.
『감사원장에 취임하면서 개혁정책에 적극 참여했다. 물러나게 됐지만 정부의 개혁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반드시 성공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다. 성공을 빌겠다』
―대통령에게 건의나 충고할 내용이 있는가.
『(웃으며) 어제 사의를 표명하면서 청소년문제와 차세대교육정책등 두세가지를 건의했다. 천천히 얘기하자』
―후임총리에게 당부할 말은.
『정말 인품이 좋으신 분이다. 직원들에게 좋은 덕망과 인격을 갖춘 분이니 잘 보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좀 쉬고싶다. 변호사사무실을 내든지…, 생활 방도를 찾아보겠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공직에 몸담을 생각은.
『다시는 공직과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다』(그는 『대법원장의 제의를 받는다면』이라는 질문에도 『다시는 공직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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