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지원 중단지시 등 내심 못마땅/청와대/UR사과 등 국정운영방식에 평소 불만/이 총리 22일의 갑작스런 총리경질은 김영삼대통령과 이회창총리의 불같은 성격이 맞부딪친 결과로 빚어진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대한 이총리의 견제가 김대통령에게는 월권으로 비쳐진 것이 촉발요인이 됐으나 청와대와 이총리의 「불편한 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청와대는 이총리의 소신을 「독선」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났고 이총리도 청와대의 국정운영스타일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민주계를 비롯한 여권세력과 정부부처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총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김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총리에 대한 김대통령의 개인적 신뢰는 어느 누구보다도 높았던게 사실이다. 때문에 대통령취임전부터「대법원장감」이라고 꼽으면서 김대통령은 이총리를 챙겨왔고 새정부출범과 더불어 감사원장에 임명하면서도『언제가는 대법원장이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원장 재직시절 이총리는 특유의 대쪽같은 성품으로 감사원을 명실상부한 사정의 중추기관으로 만들면서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어냈지만『다른 기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고 독주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지난해 9월 김덕주대법원장이 물러났을때 이총리는 김대통령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여권내부의 견제를 받아 마지막 문턱에서 대법원장의 꿈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김대통령은 이총리를 불러 개인적으로 위로했고 지난해 12월 UR정국타개를 위한 개각에서 주변의 예상을 깨고 총리로 전격발탁하는 인정을 보였다. 하지만 여권 일부에서는 이총리의 발탁을 긍정적으로 보지만은 않았다. 원래 이총리에 대해서는 5,6공에 관여했던 구여권세력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으나 감사원장재임 10개월동안 그같은 감정은 현 집권세력에도 상당히 확산돼 있었던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이총리의 내각운영스타일은 차츰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 일이 생겨났다. 지난 3월 있었던 이총리의「관변단체지원중단지시」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청와대와 사전조율없이 이총리가 덜컥 내무부에 지시를 하자 명분상 옳은 일이기에 청와대에서도 내놓고 제동을 걸지는 못했지만 비공식적으로 해명을 하는등 내부적으로 상당한 소동을 빚었다. 또 최기선인천시장과 박태권충남지사의 사전선거운동시비로 여권이 수세에 몰렸을때 이총리는 전례없는 시도지사회의에 참석,기관장들에게 주의를 주는등 발빠른 행보를 보여줬다. 역시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없었던 행동이다.
이총리쪽에서도 청와대가 하는 일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가졌던 것같다. 지난 4월초 UR최종이행계획서수정에 따른 총리담화발표에서 이총리는 끝까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고집했으나 결국 청와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 상문고사건이나 과천선사고때도 이미 이총리가 엄단지시를 내렸는데도 뒤에 대통령이 나선 것을 좋게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와 이총리의 사이를 갈라놓은 결정적 계기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발족이다. 지난 13일 대통령의 지시로 이 기구가 만들어지자 이총리는 자신의 권한이 침해됐다는데 강한 반발을 보였고 이틀뒤 청와대 주례보고에 들어가 총리비서실장의 회의참석을 김대통령에게 건의했으나 정식 멤버가 아닌 옵서버 자격만이 주어졌다.
이와 함께 이총리의 전격사퇴배경에는 이총리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면서 차기대권설 서울시장출마설등이 시중에 유포되면서 몇몇 신문에 보도된 것이 김대통령의 심기를 흔들어놓았다는 관측도 있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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