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의 권위가 말이 아닌 세상이다.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존경받아야할 대학교수와 교수사회가 요즘들어 자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고 학문연구도 게을리 하면서 무사안일에 탐닉해 우리의 대학교육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양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이 달라지려면 교수부터 개혁돼야 한다는 「교수개혁론」이 그 어느때보다 호소력을 갖게 됐는지 모른다. 교수와 교수사회에 던져지는 이러한 비판과 비난, 불만과 실망의 소리는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가.
사립대의 한 교수가 최근에 내놓은 「대학과 교수사회 이대로는 안된다」는 책속에 그려진 교수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속에서 대학교수들만이 너무나 변화하지 않은 구태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강의는 적당히 하면 되고, 연구는 대학원생이 대신케 하며, 돈 생기는 일과 노는 일에 더 신경쓰는 교수가 여전히 많다는 고발은 차마 듣기가 민망할 정도다.
재작년 가을에도 지방의 한 국립대학 교수가 「대학사회의 위기와 문제」란 글을 통해 교수사회의 황폐한 반교육적 모습들을 고발해 사회에 충격을 줬던 일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도대체 왜 우리 대학교수들은 변화를 거부한채 구시대적인 행태만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가. 2∼3년씩 저서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학술논문 한편을 쓰지 않고서도 세월만 흐르면 부교수가 교수로 승진하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무사태평의 안일한 대학사회의 풍토는 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대학의 교수임용및 승진과 정년제가 기득권보호 위주로 여전히 폐쇄적이며, 학연·지연·혈연적인 요소가 교수의 자질적 요소를 압도하는식으로 잘못돼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 우리 대학교수사회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만을 교수요원으로 충원하는 동계번식, 더 정확히 말해 학문의 근친관계가 판을 친다. 이런 현상은 소위 명문대학일수록 심하다.
「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든 문민정부가 출범한지도 2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실로 엄청나게 변모했다. UR타결로 국제화·개방화·미래화를 향한 국제경쟁력 강화를 겨냥한 새로운 대응전략의 모색에 우리는 직면해있다. 교수들이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모를리 있겠는가. 그런데도 대학교수들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피하며 미래 대비에 동참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 2세들의 장래는 어찌 되겠는가를 대학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대학인들이 더이상 주춤댈 시간이 없다. 대학은 교수들이 더 잘 가르치고 더많이 연구할 수 있게 해야한다. 교수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교수 업적 평가제를 서둘러 도입해 교수사회가 경쟁하고 평가받도록 해야한다. 경쟁을 두려워하거나 가르치고 연구하는데서 생산성이 없는 교수는 강단에 설 수 없게 해야한다. 이것이 교수와 대학의 권위를 되살리고 우리사회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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