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진 진실 역사적 실체로 되살려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아리랑」이 16일로 1천회를 돌파했다. 일제하 한국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실감 있는 인물묘사와 흥미로운 구성, 철저한 고증으로 독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대미를 향해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소설 「아리랑」의 문학적 의미를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조명한다.【편집자주】
작가 조정래의 「아리랑」이 연재 1천회를 넘어섰다. 2백자 원고지로 1만매 분량이다. 제1부가 을사보호조약(1905)을 전후로 한 호남평야와 군산에서 시작되어 하와이로 팔려간 조선 유랑민과 국내외 의병투쟁의 어려움을 배점동, 송수익, 공허등의 인물을 통해 그렸고, 제2부는 만주로 거점을 옮긴 주인공들이 청산리 독립전쟁으로 수렴되는 과정과 그 고난의 행적을 그렸다.
한편 의병세대의 뒤를 잇는 국내 및 해외에서의 신세대의 등장이 제3부의 중심세력권인데, 바야흐로 사상적 밀도를 지닌 국내의 항일투쟁 세력과 만주의 의병 후손들이 연해주를 거점으로 하여 항일 빨치산 투쟁을 벌이는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작품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연재된 이 작품의 독자중 한 사람으로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장대한 서사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 서사문학의 남다른 특징이자 특권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구체성에 있다. 이 서사문학의 고유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규모의 장대성이 요망되는 것이다.
둘째, 한민족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구체성이라는 점. 어둠 속에 놓인 삶의 진실은 신화로 가라앉기 쉽다. 그 방법론은 간단명료한데, 곧 소재 및 주제의 체험화이다. 구체성이란, 「발바닥으로」 글쓰기에서만 겨우 달성되는 것. 해삼위, 하와이, 두만강 기슭에 흩어져 있는 사금파리 하나에 대한 무게달기가 이에 해당된다.
셋째, 제목 「아리랑」이 말해주듯 한민족의 생존에 관한 싸움엔 원래 승패가 없다는 점. 민족사에 있어 어떤 패배도 치욕이 아니라는 것, 싸우지 않음이야말로 불명예라는 것, 이 사실이야말로 작가 조씨가 이 작품에 임하는 창작동기가 아니었을까. 광복 50주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음미될 사항이 아닐 수 없다.<김윤식·문학평론가·서울대국문과교수>김윤식·문학평론가·서울대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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