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지역문화가 중국문명 뿌리”/한자도 알타이계 민족의 문자로 출발/한국문화 유사성은 오랜교류의 소산 영화 「패왕별희」는 기껏해야 무술영화나 갱영화의 차원에서 중국영화의 수준을 가늠해왔던 사람들의 속견을 일거에 바꿔 놓았던 작품이었다. 중국 현대사 전반의 애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끌어내는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배경으로서 기능한 경극의 예술성 또한 압권이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문화의 위력이었다.
하버드 새클리 박물관에 수장된 한·중·일 삼국의 서화를 감상하고 난 후 한 지한파 미국학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한국 것은 중국 것과 너무 흡사하군요. 일본 것은 나름대로 색깔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우리는 장구한 역사와 광활한 공간 위에서 전개된 중국문화의 깊이와 스케일, 다양성에 어쩔 수 없이 압도된다. 중국은 바로 이 문화의 힘을 자랑으로 삼아왔고 역사적으로 그 힘에 의해 주변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시켜왔다. 근대까지 아시아 제국에서 암묵적으로, 혹은 공식적으로 승인된 중국의 이러한 패권주의를 우리는 화이론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중국문화와 왜소한 주변, 그것은 이미 우리의 잠재의식이다.
중국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야 했던 이러한 전제로 인해 자기 정체에 대한 모색이 난관에 부딪쳤을 때 나에게 의식의 새로운 눈뜸을 가능케 해주었던 책이 독일계 미국학자인 에버하르트가 쓴 「고대 중국의 지방문화」였다.
에버하르트는 말한다. 중국에는 애당초 자기동일성을 지닌 오늘날과 같은 중국문명이라는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다양한 지방문화등이 평등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다시 그는 말한다. 황하문명을 중심으로 한 지배론적 중국문명론은 대체로 한대 이후 성립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러 그것은 제국주의적, 종속주의적 관념의 소산으로 밖에 평가될 수 없다고.
그의 주장에 대해 중국측의 학자들은 전통을 무시하고 중국을 분열시키는 음모라고 격렬히 반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황하 이외의 변방지역에서 상고 시대의 유적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면서 에버하르트의 가설은 정론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상 중국문명의 중요한 내용들은 대부분 주변문화의 영향으로 형성된것이다. 한자만 해도 그 시초는 지금의 중국민족이 아닌 알타이계 은민족의 문자로부터 출발하였다.
따라서 한자는 알파벳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북아권의 모든 민족이 공동으로 발전시켜온 문자체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문화가 중국문화의 모방이나 아류라는 지적은 불공평하고 타당성을 잃는것이다.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유사성은 상고 이래 국경을 접하면서 문화의 상호교류를 통해 그 차이성이 강쇠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것을 일방적인 모방관계로만 파악하는 인식은 근대 이후 성립한 민족, 국가 개념으로 과거의 중국을 합리화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고대 중국은 오늘날과 같은 국가 중심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의 작품을 갖고 와서 상연할 수 있는 무대공간과도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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