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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외교방향/김경원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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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외교방향/김경원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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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냉전체제는 종식되었으나 아직 새로운 국제질서는 정착되지 않은 세계질서의 전환기에 살고 있다. 미국은 「시장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 신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전환기의 외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정확한 상황인식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전환기에는 상황자체가 유동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세판단이 균형을 잃기 쉽다.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한국과의 수교가 가능하게 되었을 때 소위 「북방정책」에 흥분한 당시 외교당국자는 한국정부의 외교정책을 「전방위외교」라고 선언한 일이 있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개념이다. 「전방위외교」가 모든 나라와 수교한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정책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만일 조금이라도 강대국들에 대한 「등거리외교」의 뉘앙스가 있었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강대국들에 대해 등거리외교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당국자가 「전방위외교」 운운하게 된 것은 냉전종식후의 전환기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우리 외교의 중심을 미국에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또는 다른 강대국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우리의 당면한 외교정책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보도가 있었다. 이런 사고 역시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핵문제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한반도문제에 관한 미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미국은 한국방어에 긴요한 책임을 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외교적 자산을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다.

 미국의 역할은 북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더욱 중요하게 된다. 동북아지역은 앞으로도 미국의 안보역할이 계속되어야만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만일 미국이 동북아로부터 후퇴한다면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자신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하므로 핵무장을 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유발하게 되고 한반도는 중일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협력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생존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중국 또는 일본 어느 한편으로 기울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중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과 일본과 제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 사이에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전환기의 새로운 면을 의식한 나머지 무엇이 중요한가를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변화 자체를 부인하고 과거에만 집착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른바 보수파에 의하면 우리의 외교는 전적으로 미국과의 협력관계에 의존해야 하며 북한핵문제에 있어서도 한미가 공동으로 대북압력을 가해야 하고 북한은 절대로 믿을 수 없으므로 협상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미국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동북아의 상황은 냉전종식후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에 통상압력을, 중국에는 인권압력을 가하고 있으나 일본, 중국 모두 미국에 대해 독자적 행동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외교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고 중국도 의도적으로 미국에 대해 아시아국가들의 공동인식을 과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의 유일한 군사초강국이 되었지만 미국의 실제 정치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념이 문제 안되는 새로운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키신저는 최근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미국은 유라시아대륙에 대한 섬으로서 유럽이나 아시아를 어떤 단일세력이 지배하게 된다면 미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태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간의 세력균형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중일균형을 위해 이 지역에서 안보역할을 계속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과 한국에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만일 미국이 키신저의 세력균형정책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전략적 이익과 일치한다. 그러나 문제는 키신저 자신이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은 역사적으로 세력균형정책을 거부하고 전통적 고립주의와 이상주의적 보편주의 사이를 방황해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클린턴정부는 아시아지역에서 세력균형보다는 「시장민주주의」확장이라는 이상주의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이러한 미국외교정책의 문제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미국의 후퇴를 기정사실로 전제한다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다. 다만 미국의 중요성을 계속 우리 외교의 기본전제로 하면서 동시에 동북아지역의 세력균형의 유동성에 민감한 「균형의 외교」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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