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 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 북)

입력
1994.04.18 00:00
0 0

 남쪽의 역사학자중 보수파들은 좀 불만이 있다. 여지껏 동학혁명, 란으로 불렸던 1894년이 점차 갑오농민전쟁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북에서는 물론 갑오농민전쟁이다. 한길사가 지난 1월에 낸 한국사 12권에도 갑오농민전쟁이다.

 어떻든 수령과 지도자가 읽고 감격했다는 박태원(1909∼86)의 장편소설 제목은 「갑오농민전쟁」(89년3월 「공동체」, 89년4월 「깊은샘」복간)이다.

 북의 문학비평가인 박종원, 류 만이 펴낸 「조선문학개관」에는 『이 작품은 세태풍속묘사의 생동성, 당대 시대상이 드러나는 개성적인 언어형상, 치밀한 구성조직등으로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예술성」은 6·25 때 북으로 와 『당의 크나큰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는 본래 카프계열의 작가로 일제 때에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썼다. 북은 이런 소설류는 『사상성 경향이 뚜렷치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번 「남과 북」에 소개된 「화두」의 작가 최인훈은 「소설가 구보」는 식민지·노예상태의 시대에 지식인인 작가가 민족관념을 강하게는 표현못해도 그 진실을 형상화하는데 이 작품은 탁월한 것으로 추켜 세우고 있다.

 그래서 그는 70년에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써 76년 책으로 냈다. 이번 「화두」에서 그는 『박태원의 「구보…」가 북에서 계속 쓰여지거나 이 제목을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70년대 「구보」를 「구보」로 바꿔 한글로 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고 밝히고 있다.

 남쪽에서의 박태원작품을 묘작할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유를 좀 어렵게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인용자 삽입)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환상의 생태계라는 생각, 시대의 저편에서 부르는 소리, 시대의 저편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내 얼굴, 그것이 박태원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의 이런 「소리」와 「거울」은 째어지고 깨어진다. 북의 교양잡지인 「천리마」 93년 11월호에는 「작가 박태원과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이란 방철림 「본사기자」의 평이 실려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가들이 농민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쓴다면 력사를 쓰듯 사실을 그저 라렬할 것이 아니라 어떤 전형적인 개별적인 사람들의 투쟁을 통하여 그때 사회의 농민전쟁 전반과 계급투쟁의 전모를 보여줄 수 있게 그려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는 것. 이에 그는 65년 양안시신경 위축증과 망막염, 75년 고혈압으로 전신불구 속에 제1부를 77년에 마쳤다. 78년 1월에 수령은 『소설을 잘 썼다. 작가가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2부는 80년에 나왔다. 그때는 지도자가 희귀한 약재를 구해와 이에 힘입어서인지 구술로 책을 낼 수 있었다. 그는 병세가 악화되어 이제는 듣기 밖에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3부는 완결이 될 수 없었다.

 그때 74세의 「안해」권영희가 1·2부의 구도와 자료에 따라 원고를 읽어주면 손바닥에 「좋소, 좋소」를 적어주는 의사소통 속에 4년이나 걸려 3부가 완성됐다. 그후 그해 86년 7월10일 그는 사망했다.

 고부읍에 사는 오상민이라는 청년이 녹두장군 전봉준과 함께 1894년을 농민과 함께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외치며 싸우는 이 소설. 그러나 계급성과 형상언어 사용이 잘됐다는 칭찬에 뒤이어 엉뚱한 북 독자들의 코멘트가 따르고 있다.

 지도자는 『문학은 완강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의 열매입니다. 꾸준하고 완강한 노력을 떠나서는 그 어떤 창작성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고 그의 배려로 작품이 완성된 것을 자랑하고 있다.

 제1부를 읽고 박춘명(김형직사범대학 교원)은 독후감을 표하고 있다. 『오늘 박××괴뢰도당은 옛날 봉건악질관료배들의 행위를 초월하는 매국매족 행위를 서슴없이 강행하고 있다. 박××역적을 타도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반드시 이룩하자』(78년 「조선문학」4호)

 정성희(김일성 종합대학생)는 2부를 읽고 울부짖고 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제와 그 앞잡이 전××놈과 같은 인간백정, 력사의 오물을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자기가 맡은 혁명과업에 더욱 분발하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지였읍니다』(81년 「조선문학」8호)

 고인이 된 박태원, 아직도 살아 있는 그의 안해 권영희, 그를 좋아하는 최인훈은 이 엄청난 「소리」와 「거울」을 어떻게 듣고 봐야할 것인가. 대답을 안하는게 좋을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