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정부 기술개발지원·정책규제/CR 시장구조·기업조직까지 간섭/“선진국이익 보호” 의도 노골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 다자간협상의 새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기술라운드(TR)와 경쟁정책라운드(CR)는 선진국이 개도국의 추격을 봉쇄하려 한다는 면에서 환경이나 노동분야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
TR와 CR는 아직까지 그린라운드(GR)나 노동라운드(BR)보다는 논의의 강도가 약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기술개발을 통한 성장의 싹을 근본적으로 꺾으려는 게 TR의 의도이고 개도국의 시장구조나 기업조직 형태에까지 간섭하겠다는 게 CR의 기본 발상이라 여겨질 정도다. GR가 지구환경 보호, BR는 근로자의 기본 인권을 각각 내세워 명분이라도 당당한 것과는 크게 비교가 된다. 냉전종식이후 세계 경제질서가 얼마나 선진국의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지 잘 말해주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TR는 개별국가의 기술개발 정책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쳐 국가간 마찰요인이 되고 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기술규범 제정논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다 UR에서 제시된 국제기술규범, GR로 가시화되는 환경기술관련 규범등 기술과 관련된 국제규범 제정움직임을 합쳐서 뭉뚱그린 개념이다.
전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적 부상은 기업의 자체 능력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기술개발 지원등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신흥개도국이 일본과 같은 국가주도형 개발전략을 추구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기술격차를 줄여나가자 선진국은 크게 부담스런 입장이 됐다. 더욱이 미국등 선진국은 애써 만든 과학 기술을 「무임승차」함으로써 개도국들의 경제발전이 이뤄졌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제는 선진국이 국제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개도국의 기술정책에 규제를 가하겠다는 주장이 TR논의의 핵심이다.
OECD기술규범은 산업기술에 대한 정부지원이나 소위 「전략산업」에 대한 집중지원이 공정경쟁을 해치고 국제무역에서 왜곡을 초래하므로 적절한 규범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쟁정책라운드(CR)는 92년 다보스회의에서 브리튼 당시 EC집행위부위원장이 제기하고 94년초 클린턴 미대통령이 UR 이후 통상이슈의 하나로 경쟁정책을 지적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논리는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화시대가 됐음에도 국가마다 제각각의 시장구조와 기업조직 관행이 상존해 통상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예컨대 일본기업은 독과점이 많아 경쟁제한적인 국내시장에서 초과이윤을 얻은 뒤 이를 토대로 미국등 훨씬 경쟁적인 시장에서 진짜 실력이상의 우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시장개방의 차원뿐 아니라 시장구조나 기업관행상 차이까지 없애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경쟁조건을 평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경쟁정책을 통상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배경이다.
현재까지 CR의 협상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거론된 분야는 ▲담합에 따른 가격·물량조절과 입찰조작 ▲모기업과 하청기업간의 연계에 의한 시장진입 장애▲독점적인 공기업의 지위남용 ▲반덤핑조치 남발에 따른 경쟁제한등이다.
TR와 CR는 결국 겉으론 경쟁조건의 평준화를 내세우면서 실제론 발전단계가 뒤늦은 국가에 대해 선진국 수준을 요구한 뒤 제재를 가하자는 속셈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건 실력 배양만이 유일한 대응책일 수밖에 없다.【마라케시=유석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