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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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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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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에는 정확히 말해 아직 본명이 없다. 무슨 별명처럼 그냥 4·19인가 하면 의거·혁명도 된다. 의미 규정도 애매한채, 확정된게 사실상 없다. 실명 4·19는 역사의 부침에 따라 망각과 경의의 대상으로 오락가락 했다. 위대한 저항정신에 비해 역사속의 운명은 기구하기만 하다. ◆「눈 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 건졌다/ 분노가 폭발하던 사월십구일/ 우렁찬 아우성은 메아리 되어/ 민주대한의 역사 위에 길이 남으리/ 이루자 멸공통일 그 정신으로」― 4·19로 태어난 제2공화국때 공모한 「4·19의 노래」당선작이다. 5·16으로 금지곡이 되었다. 이 노래를 기억하거나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설프게도 4·19는 민주의 햇살이 비치면 양지에 나오고 그 반대면 음지에 숨는다. 우리 스스로 이룩한 민주정의의 탑을 고이 간직하기가 어려웠다. 이리하여 4·19는 상처투성이로 지금까지 외로운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경의의 대상으로 부활한 것은 다행이 아닐수 없다. ◆그때의 주역들은 이제 초로의 연배로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정계 진출이 두드러진다. 그들이 4·19가 양지로 나오자 저마다 주역임을 자랑하고 주장한다. 음산한 시절의 침묵과는 대조적이라서 감회가 착잡하다. 요즘 정가에선 4·19 주인 노릇에 기선을 잡으려는 행태가 엿보인다. 여야 마찬가지다. 4·19는 정치색으로 또 상처를 입는다. ◆본명도 못 얻은 「미완의 혁명」은 결코 정치의 이용물이 될수가 없다. 오늘에 와서 진정한 주인은 역사일 뿐이다. 함부로 주역이라고 나섬은 역사를 모독함에 다름이 없다. 이제 와서 논공행상이라도 다투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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