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현 전조계종총무원장의 사퇴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공인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반추해 보았다. 모두가 잠든 첫 새벽에 기자 한사람을 몰래 불러 사의를 표하고 자취를 감춘 것은 『도망쳤다』는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될 수 없을 것이다.
○시기 놓치면 비참
공인은 그 자리에 앉을 때보다 떠날 때가 더 중요하다. 한사람의 생각과 언행이 그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공인이다. 세상은 그런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 그 인물의 훌륭함을 인정해 준다. 그래서 재임중 큰 과오만 없다면 적당한 때를 찾아 물러난 사람을 오래도록 존경하게 된다.
이승만대통령이나 박정희대통령, 차우셰스쿠 루마니아대통령같은 비운의 정치가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사의 격랑이 몰아칠 때마다 자리에 연연하다 떠날 시기를 놓쳐 봉변을 당한 사람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 왔다.
그들은 대개 정치인 또는 고위공직자들이었으나 의현스님은 우리 전통종교의 지도자였기에 더욱 물러남의 모양새가 중요하다. 불교는 무념·무상·무아의 경지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무념·무상·무아는 무욕이다. 그래서 불교는 세속적 욕심을 계율로 금한다.
구총무원측은 의현스님의 3연임이란 욕심에 눈이 멀어 폭력배까지 동원해 목적을 이루려다 망신을 자초했다. 종법은 조계종 최고의 권좌인 총무원장의 임기를 「중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있다고 한다. 속세의 법처럼「3선은 안된다」는 명문규정이 없음을 근거로 3연임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중임이란 누가 보아도 한번만 더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서 원장의 무리수
의현스님이 3연임을 꾀해 3월16일 종회 소집을 공고하자 불교의 양심세력은 3선저지와 총무원의 권불유착 타파의 기치 아래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라는 조직을 만들어 실력행사에 나섰다. 의현스님 3연임 결정을 위해 소집되는 중앙종회를 막으려고 조계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자 총무원측은 3백명 가까운 폭력배를 동원하고 경찰의 비호까지 얻어 목적을 관철했다. 이 폭거에 분노한 원로들이 의현스님의 즉각사퇴를 선언하고, 전국승려대회가 해임결의안까지 통과시켰는데도 그는 불교의 제일 큰 어른인 종정을 움직여 연명을 모색하다가 사부에게까지 큰 욕을 보였다. 유명한 선승으로 추앙받아 온 서암종정은 그의 청을 물리치지 못해 전국승려대회를 금하는 교시를 내림으로써 불교대중의 개혁요구를 거역한 씻지 못할 오명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승려대회에서 체탈도첩이란「극형」까지 당했다. 초법적인 승려대회에 운집한 성난 스님들은 그에게 속세의 사형에 해당하는 체탈도첩형을 내리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체탈도첩은 불교의 여덟가지 징벌 가운데 최고형이다. 승려의 신분증인 도첩을 빼앗고 승복을 벗겨 산문 밖으로 내쫓는 형벌이다.
○국민정서에 위배
의현스님이 천하대세를 거역하며 그토록 자리에 연연한 것은 끝까지 권력의 비호를 믿었기 때문이라 한다. 폭력배를 끌어들여 농성스님들을「 개 패듯」하여도 경찰은 종교내부문제라고 모른 체했고, 나머지 농성자들을 끌어내 무더기로 구속해 주니까 대세는 자기편이라고 착각했다던가.
이번 조계종사태를 두고 어떤 사람은 분규 또는 분쟁이라고 말하고, 한편에서는 개혁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밖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3선은 안된다」는 국민정서를 확인해 주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공인은 물러날 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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