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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어디로 갈것인가/최상용(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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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어디로 갈것인가/최상용(한국논단)

입력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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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기회있을 때마다 핵을 가질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북한핵에 대해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보를 갖고 있는 미국당국자 가운데는 북한이 최소한 한두개의 핵을 갖고 있다든가 아직 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50%라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우리 국민으로서 가장 믿어야 할 김영삼대통령도 현재로서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언명했다. 이쯤되면 북한핵과 관련된 당사자들의 의견은 거의 다 나온 셈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핵문제가 가지는 위험성마저 일상적 무관심속에 풍화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에 비해 IAEA, 유엔등 세계의 정치무대에서는 북한핵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고 미국은 시한을 정하여 북한의 의지를 시험하려 하고 있다. 핵의혹으로 사면초가에 있는 북한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시점에서 북한핵에 대한 엄밀한 사실확인과 권위있는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북한핵을 둘러싼 국내외의 논의를 지켜 보면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정치적 의미를 확인해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로 북한의 일관된 정책목표는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의 유지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에 있어서는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이 체제유지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핵을 고집할 것이고 반대로 핵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판단을 내리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북한은 핵을 보유하든 아니면 정치적 카드로만 사용하든 간에 핵이 그들의 체제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대화를 통한 당근과 제재를 통한 채찍을 저울질하는 경우도 그 당근이 효력을 가지려면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의 최우선순위의 국가이익인 체제유지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채찍이 의미가 있으려면 북한이 그 채찍에 실제로 두려움을 느끼거나 아니면 체제붕괴를 초래할지도 모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그 채찍의 결과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본인식에서 볼때 그 다음 둘째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북한핵문제 해결의 능력과 책임은 일차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나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핵보유를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으며 북한핵에 대해서도 다른 어느나라보다 일관되고 강도높게 반대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정녕 북한 핵보유를 저지하려고 한다면 미·북한의 핵논의에서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원칙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북한의 핵보유를 원치 않는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핵문제에 관한한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대미종속으로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비용이 적은 선택이라고 보아야 한다. 남북한 당국이 북한핵을 대화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북한 접촉과정에서 우리가 얻어 낸 역할이 겨우 특사교환이라는 전제조건이라면 그것은 별다른 내용이 없는 명분에 불과하다. 특사교환이 무리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 좋은 일이나 특사교환에서 북한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인 동시에 정치적 미성숙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핵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정상회담의 조기실현을 시도하는것도 금물이다. 정치, 특히 외교에 있어서 환상뒤에는 대체로 환멸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핵문제에 관한 한 미·북한접촉에서 주권의식에 대한 과잉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으며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북한에 일정한 시한을 주고 여의치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강력한 행동을 취한다고 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이 발언의 의미를 가장 깊이 읽고 있는 쪽은 북한 당국일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동족인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주체」를 보였고 한국은 미국에 의존한다는 「사대주의」가 듣기 싫어 우리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북한의 「주체」외교도 미국의 정책에 대해 표면상 강력한 반발을 보이면서 언제나 어느 정도의 호응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고, 한국은 끈질긴 대미접촉에서도 핵논의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우리의 역할을 얻어낼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해야할 일은 북한을 향해서는 남북한의 정부당국이 엄숙히 약속한 「남북합의서」의 비핵화 조항을 토대로 언제라도 대화할 수 있다는 문을 열어두고 미국을 향해 북한의 핵보유를 거부하는 우리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이를 위해 미국이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당근과 채찍을 구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황의 전개로 보아 만약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핵을 고집하면 엄청난 파국이 예상되며 시간벌기로 파국을 피하면서 끝내 핵을 가지게 되면 한국과 일본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북한지도부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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