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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서 「승려」로(장명수칼럼: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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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서 「승려」로(장명수칼럼:1664)

입력
199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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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분규를 보도하면서 기자들이 고심하는것중의 하나는 스님이냐, 승려냐하는 단어선택이다. 지난 며칠사이 신문방송들은 명백하게 나쁜짓을 저지른 사람은「승려」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스님」으로 쓰고 있는데, 오늘「스님」이었다가 내일「승려」가 되는 웃지못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같은 기사안에 두 단어가 섞여 어색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대로「스님」이라고 쓰던 기자들이 고민하게 된것은 워낙 스님답지않게 험악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폭력을 휘두른 중을「○○스님(전과 몇범)」이라고 쓰면서 곤혹스러워진것은 당연하다. 이에대한 독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스님이란 승에「님」을 붙인 높임말이므로 신문기사에 스님이라고 쓰는것자체가 적절치 못한데, 범죄를 저지른 중을 스님이라니 웬말이냐. ○○목사 ○○신부라고 쓰듯이 ○○승려라고 쓰는것이 옳다』고 독자들은 주장했다.

 불교는 작년 11월 성철큰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벌어준 재산을 이번에 대부분 날렸다. 성철스님의 난해한 법어를 도무지 이해할수 없었던 사람들도 그토록 엄격했던 구도자의 생앞에서 옷깃을 여몄고, 우리시대에 큰인물을 가졌었다는 감동을 느꼈다. 온나라에 넘치는 추모의 물결을 보면서 불교신자 아닌 사람들도 불교가 중흥의 기회를 맞게됐다고 반가워 했다.

 그러나 이제 불교는 여론에 의해「스님」이란 경칭마저 차압당할 위기를 맞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중을 스님이라고 높여부르게 된것은 중이란 말이 존경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도 하고, 불법승을 화합중이라고 부르던 한자의 「무리중」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그말에 낮추는 뜻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중이란 말은 특히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조를 거치면서 존경의 의미를 잃었고, 그 추락된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스님이라는 새 경칭이 필요했다. 스님이란 본래 중이 스승중(사승)을 높여부르던 말이었으나, 너도나도 스님이 됐다.

 조계종 분쟁의 와중에서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것은 신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싸우는 스님들이 안타까워 발을구르며 울부짖기도 하고, 전경이 겹겹이 에워싼 절 경내를 합장하고 돌면서 화합을 기원하기도 했다. 『중보고 절에가나, 부처님보고 절에가지』라는 지혜로운 말대로 그들은 싸우는 스님을 보지않고 부처님을 보면서 빌고있다.

 신도들이 스님없이 부처님에게로 가서 스님들이 싸우지 않도록 빌고 있다면, 도대체 스님들이 설 땅은 어디인가. 스님들은 신도들의 기도를, 그 너그러움을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들이 설땅을 잃지 않으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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