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뒷유리창 아래쪽을 보면 간혹 「손님을 가족처럼」이라고 쓴 글씨가 눈에 띈다. 손님에 대한 친절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 최상의 친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족은 한없이 가깝고 따뜻하고 또 정겹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손님을 가족처럼」이라는 모토는 손님에 대한 그러한 대접의 약속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친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가까운 사람 사이에는 친절이란 덕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 사이, 친구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들한테 친절하다』느니, 『아내가 남편에게 친절하다』느니, 『친구가 친구에게 친절하다』느니 하는 말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친절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은 함부로 대하기 쉽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리라 믿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때로 함부로 행동한다.
친절은 경쟁 상대나 적에게 베푸는 것도 아니다. 『형은 정적에게 친절하다』느니, 『그 사람은 경쟁 회사 사람에게 친절하다』느니 하는 말도 온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친절」이 쓰일 자리가 아니다. 적이나 경쟁 상대는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그에게 친절이란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친절은 나와 이해 관계가 직접 부딪치지 않는 남에 대한 배려이다. 그것도 1대1의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배려이다. 친절은 단순히 상냥하게 웃는 얼굴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객을 향하여 구부리는 허리의 각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겉보기의 친절이다. 상냥하게 인사를 한 안내원이 정작 손님이 원하는 정보를 줄 수 없다면 그의 친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은 친절하나 운전이 난폭하거나 미숙하다면 운전사의 친절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친절은 자기가 맡은 일에 정통할 것을 요구한다. 친절은 또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처음서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불편을 주는가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친절이 아니다.
친절이 발전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때, 좀처럼 친절을 배우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친절의 의미는 다시 음미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람을 가까운 사람과 적으로 나눈다. 그리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거나 적에 포함시킨다.<임홍빈 서울대교수·국문학>임홍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